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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공공기관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⑯ 양수리와 양평

 

[웹이코노미=글·그림 임진우] 늦잠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달려간 휴일 이른 아침의 양수리. 하늘은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 흐린 구름 사이로 해가 숨어 있다.

 

 

날씨는 생각보다 쌀쌀하고 공기는 신선하다. 물안개가 사방에 가득하고 강물은 고요한데 강가에 서있는 굵은 느티나무가 인상적이다. 두물머리의 수호신과도 같은 이 고목은 이렇게 고요한 아침을 맞으며 잔잔한 강물과 함께 400년의 세월을 버티고 서있다.

 

 

 

 

사방이 정지된 듯 고요하지만 고즈넉한 풍경 속에는 서둘러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띈다.

 

- 무거운 카메라와 삼각대를 옳기며 좋은 풍경사진을 담아보려 애쓰는 사진 애호가들.

 

- 강변 풍경을 배경삼아 사랑의 추억을 남기려는 커플들.

 

- 대학입시의 압박에서 잠시 해방하고자 일탈을 감행한 듯 셀카봉을 들고 있는 밝은 표정의 학생들.

 

-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없으면 양수리의 자연풍경은 공허하다. 어제 밤에 누군가 새우깡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는지 빈 병과 비닐봉지들이 주인 대신 벤치 위에 누워있다. 힘든 일이 있었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잊어야 했는가... 무심한 강물이지만 위로를 얻고 떠났기를 바란다.

 

일출이 진행되면서 안개는 점점 사라지는데 그림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내 따뜻한 국물이 그리워진다.

 

 

인근에 위치한 다산생태공원 역시 키가 큰 나무들로 조성된 곳이라 주말 산책 이용객들도 많아지고 최근에는 드라마 촬영 장소 등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 곳 다산유적지는 정약용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오랜 유배생활 끝에 생을 마친 곳이기도 하다. 남양주에 다산유적지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 곳에 다산의 묘가 있을 줄을 몰랐다. 정약용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공원 곳곳에 설치해 다산 생태공원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고요한 물과 산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어우러져 풍광이 빼어난 이 곳 생태공원 역시 휴일 아침 산책하러 나온 방문객들로 조금씩 깨어난다. 설계자의 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조경구조물들을 지나 습지위에 설치된 목제다리를 넘으면 기존 마을 앞에 넓은 연밭이 인상적이다. 진흙 속에서도 피워내는 순결한 연꽃이 소박하게 피는 시기에 방문하면 백성을 사랑한 실학자 정약용의 마음을 더욱 느낄 수 있을까. 그 마음을 닮아 보려는 듯 방문객들은 이 곳에서 넉넉한 여유를 가지고 한가로운 발길로 산책과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 연밭과 실개울을 따라 형성된 수변‧수생식물이 인근 능내 하수처리장의 방류수를 2차 정화해 깨끗한 수질로 개선해줄 뿐 아니라 조안(鳥安)이란 지명처럼 이 곳에 서식하는 새들에게 아늑한 보금자리를 제공해 준다고 한다.

 

팔당호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 바람을 가슴 가득 안고 돌아오는 산책길은 봄이면 꽃밭이요, 가을이 오면 갈대와 억새로 특별한 장소를 선물해준다.

 

또 겨울에는 하얗게 얼어붙은 팔당호를 바로 눈앞에서 조망할 수 있을 테니 사계절 모두 각각의 특별한 분위기로 낭만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양수리에서 양평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다보면 국수리를 지나 옥천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냉면으로 유명한 곳이라 이 방면의 덕후들은 서울에서 차를 몰고 이 곳까지 와서 냉면을 즐기고 갈 정도다. 그 중 '고읍냉면'집은 이미 정평이 나있는 원조집으로 터줏대감 격이다. 몇 년 동안 못 가보았는데 최근에 방문해보니 집도 바뀌고 터도 바뀌었다. 식당은 현대식으로 개조됐고 옛 정취는 찾을 수 없었다. 냉면 맛은 그대로인데 왠지 부족함이 느껴진다.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 분위기도 한 몫 한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실감한다.

 

 

못내 아쉬움을 털고 돌아 나오는 길에서 빈티지한 풍경이 눈에 들어와 스케치북에 담고 싶어졌다. 주변에 오래된 고목을 배경으로 기울어진 담벼락, 전봇대와 간판, 잡초가 자라나는 기와지붕, 빛바랜 툇마루, 녹이 슨 선홈통과 굴뚝 등 일반인들에게는 소외된 요소들이지만 시선과 발길을 붙잡는다. 소외된 아름다움들이 서로 몸을 부비며 모여 살고 있다.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오늘까지 왔으니 내 눈에는 참 대견하고 예쁘다. 인위적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풍경이다. 우연하게 길 위에서 얻은 큰 수확이다.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 글·그림 임진우 정림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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