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이코노미=글·그림 임진우] 2년 전, 짧은 일정으로 환경 분야를 공부하는 일행들과 함께 일본 규슈지역을 종단하는 답사여행을 다녀왔다. 답사주제는 ‘현해탄 건너 자연과 역사에서 배우는 미래의 도시, 환경’으로 고대자연유산과 근현대 동서, 한일 역사 유산을 통해 읽어보고자 했다. 일본 최초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고대 원시림 가고시마 현의 야쿠시마와 근대 한일 역사유산인 사가 현의 가라쓰와 아리타 등 방대한 지역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첫 번째 답사지는 우리나라 남단의 제주처럼 규슈지방의 남쪽에 위치한 야쿠시마 섬이다. 이 섬은 비교적 잘 보존된 원시림이 인상적이며 이 곳에서는 자연과 상생하는 일본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먼저 도착한 곳은 낙차높이 88m의 일본 최대라는 오코폭포.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본 상공에서 힘차게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와 낙수의 강한 굉음은 아직도 울림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한 달에 35일 비가 내린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일본 최다 강우지역이어서 사방 천지에 푸른 이끼가 가득하다. 시라타니운스 계곡 탐방을 위해 버스로 산 중턱까지 오르고 그 곳에서 트래킹 코스를 택했다. 녹색의 땅을 밟으며 산을 오르니 고생대의 양치류 식물들과 엉킨 실타래 같은 뿌리들이 얽혀있어 태고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자연환경의 보존과 상생의 중요성을 배우고 규슈로 출발하기 위해 일행들과 선착장에 나왔다. 배를 기다리며 미야노우라 항에서 바라본 어촌풍경은 평화롭고 한가하다.
전용버스로 규슈를 종단하여 가라쓰시로 이동했다. 이 곳은 지형적으로 옛 조선 땅과 가까워서 이 곳을 침략의 전초기지로 만들었다는 나고야 성터가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7년~1598년)의 출병기지였던 이 곳은 한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호령하던 화려한 성이다. 그러나 찬란한 금빛 궁궐은 온데 간데 없고 상전벽해로 변해버린 지금은 돌무더기와 나무만 남아있을 뿐이다. 유독 우리가 답사한 날은 흐린 날씨여서 낮게 깔린 구름사이로 을씨년스럽게 까마귀 몇 마리가 날고 황량한 바람만 불고 있다. 이 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인간의 야욕이 부질없음을 얘기해주는 듯, 폐허의 언덕위에 커다란 고목 한그루가 증인처럼 버티고 서있다.
그 곳에서 가까운 가라쓰 항으로 이동, 배를 타고 나나쓰가마의 해식동굴로 향했다. 오랜 세월 동안 침식절벽이 만들어 낸 주상절리 문양이 조각품처럼 아름답다. 오랜 세월동안 파도와 바위가 주고받은 메시지가 바위에 고스란히 문양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서로를 보듬고 쓰다듬으며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선상갑판에서 바라본 항구도시 가라쓰의 어촌은 급경사지의 집들이 수직으로 포개져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이 곳 가라쓰 만에는 약 100만 그루의 해송으로 이루어진 송림이 4.5km나 이어지는 명소가 있다.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구부러진 흑송과 바다, 하얀 모래가 완만한 원호를 그리고 있어 ‘니지노마쓰바라(무지개송림)’이라고 불린다.
조선땅에서 낯선 타국으로 끌려와 일본 도자기의 전설로 살다간 도조 이삼평의 신사가 위치해있는 아리타도자기 마을 역시 평범하지만 전형적인 일본가로의 풍경을 연출한다. 인근 다케오 시의 시립도서관이 츠타야 서점으로 변신하는 과정과 운영에서 배우는 도시재생 모델의 교훈도 유의미하다.
3박4일 동안 가고시마공항으로부터 야쿠시마, 가라쓰, 다케오, 아리타, 나가사키, 후쿠오카 공항까지 강행군의 답사일정이지만 많은 도시와 자연을 체험하면서 스케치로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야쿠시마 섬의 잔상들은 기억 속에 오래도록 각인될 것이다.
매번 여행을 통해 깨닫는 점은 많은 것들을 얻어오는 대신 또 많은 생각들을 비워낼 수 있어서 유익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으로부터 도망치기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여행을 하는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 글·그림 임진우 정림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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