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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공공기관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㉟ 낙산 성곽마을들

 

[웹이코노미=글·그림 임진우] 낙산구간의 한양도성 성벽을 중심으로 이화마을과 장수마을, 창신동이 위치하는데 경사진 산동네에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다. 이 곳은 서울의 풍경 중에서 드물게 남아있는 산동네의 정서를 물씬 풍겨내고 있다. 동대문에서 바라본 조감도가 있다면 성벽 왼쪽이 이화, 충신동이고 오른쪽이 창신, 숭인 지역이다. 즉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화, 충신동은 성곽 안쪽의 마을이고 창신, 숭인동은 성곽의 바깥 마을인 셈이다.

 

 

 

 

 

 

 

 

 

 

 

◇ 이화마을

 

 

지금은 태평로에 면해있지만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1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로 이화사거리에 40년 넘게 자리하고 있었다. 업무 중에 바람도 쐴 겸, 당시 15층 사무실의 옥상에 오르면 이화동의 무질서한 이면도로가 내려다보이기도 하고 멀리 아름다운 낙산 이화마을의 변함없는 풍경이 병풍처럼 펼쳐져 보였다. 아마도 도시의 현대화 과정에서 과거의 방식처럼 사업자 중심의 개발 즉, 철거 후 재개발 방식을 택했다면 낙산의 이런 오랜 풍경은 증발되고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발의 속도는 느리지만 낙산에 모여 있는 이화, 충신, 창신동은 도시재생으로 접근되고 있어 다행이다. 도시재생사업은 개별적 터전의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장소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서울시의 정책이다.

 

낙산공원을 오르며 이화마을을 답사하면 이 곳은 나누고 사는 공동체 의식과 더불어 사는 지혜가 오롯이 남아있는 장소라서 그런지 시선이 닿는 곳마다 정겹다. 경사에 따라 옹기종기 모여 사는 소박한 집들에서는 삶의 고단함과 애잔함까지 느껴진다. 특히,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길은 유년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소환해준다. 서울시에 이런 장소가 잘 보존되어 있다니 신기한데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스케치북에 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최근에는 서울의 야경이 가장 잘 보이는 낙산에서 전문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산책할 수 있는 '낙산, 이화마을 야행' 프로그램도 있다.

 

 

 

 

 

 

 

 

 

◇ 삼선동 장수마을

 

 

혜화문에서 시작해서 낙산 성곽길 계단을 올라 걷는 한양도성은 낙산방향으로 이어진다. 한양도성 낙산구간인데 성벽 옆 보행로가 잘 조성되어있다. 성곽을 이루고 있는 묵직한 돌들마다 조선시대부터 축적된 세월과 사연이 촘촘하게 박혀있다. 사계절을 따라 변화하는 나무들과 한자리에 우뚝 서서 좀처럼 변하지 않는 성벽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성곽 옆길을 따라 걷다보면 이화마을을 오르기 전 쯤, 도성 밖의 경사지에 위치한 아담하고 검박한 동네가 눈에 띈다. 성곽과 삼선공원 사이에 위치한 '장수마을'이다. 통계자료를 확인해보니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서 얻게 된 이름이란다.

 

빈자들이 움막이나 판잣집을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되어서 그런지 낡고 허름한 집들이 아직 일부 남아있지만 오랜 성곽과 함께 시간을 쌓으면서 친근하고 정감이 따스하다. 좁다랗고 경사가 급한 길에 올망졸망 어울려 사는 성곽 밖의 소외된 거주지였지만 최근에는 새롭게 개조하는 집들이 생겨나며 동네에 활력이 생겼다. 성곽위에서 내려다보면 낮은 지붕위로 멀리 시가지가 펼쳐 보이고 아래서 올려다보면 급경사지에 차곡차곡 쌓은 집들은 하늘이 배경이 된다. 전봇대와 전선줄은 그림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씬스틸러(scene stealer)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창신동

 

창신동 역시 성곽의 바깥마을이다. 2007년 뉴타운 개발 대상 지역으로 지정되었던 창신동은 주민들의 노력으로 뉴타운을 해제하고, 2014년 도시재생 1호 지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창신동을 소개하자면, 동대문에서 출발해서 한양도성 낙산구간을 오르다 도성 바깥쪽으로 경사진 비탈길을 따라 봉제공장과 다세대주택들이 빼곡히 이어진 동네다. 걸출한 예술인, 백남준과 박수근을 배출한 장소이기도하다. 맛 집으로 유명한 냉면집 몇 군데도 빠트리면 서운하다. 돌산마을 절개지 모습은 옛 채석장의 흔적이 남아있어 서울에 존재하는 희귀한 풍경 중 하나다. 100년 전 일제강점기 시절 경성부 직영 채석장으로 만들어 이 돌을 가지고 당시 석조건축물을 지었다. 최근에는 건축적 완성도가 높아 서울시건축상을 수상한 창신숭인 채석장 전망대가 생겨서 창신숭인의 도시재생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봉제골목길을 따라가면 볼거리가 다양하다. 낮은 담장너머 집들을 구경하면서 정글을 탐험하듯이 구석구석 누비다보면 '뭐든지 도서관', '창신동라디오 덤', '000간' 등, 이색적인 간판들이 눈에 띈다. 다른 동네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이한 가로가 마치 얽힌 실타래같이 복잡하지만 오히려 친근함이 골목마다 틈틈이 숨어있다. 골목길 평상에 아낙들이 나와 앉아 수다를 떠는 옛 풍경을 떠올린다. 처마 끝을 올려다보면 좁다란 하늘이 보이고 집집마다 낡은 선홈통과 가스배관, 녹이 슨 철문, 골목에 내놓은 플라스틱 화분 등, 익숙한 공간구조는 어릴 적 살던 동네의 향수가 물씬 묻어나오는 곳이다. 03번 버스를 타고 가서 '백남준 기념관'을 둘러본 후 차 한 잔 해보시라고 주민 한 분이 추천해주신다. 이렇듯 창신동은 세월이 쌓여 시간의 지층이 켜켜이 매몰되어 있는 듯하다.

 

이 골목길 담벼락에 낙서하던 개구쟁이들과 고무줄놀이하며 노래하던 계집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 글·그림 임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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