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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공공기관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㉝ 강화도 화첩 기행

 

[웹이코노미=글·그림 임진우] 이상기후 때문인지 한 달 넘는 장마가 지루하더니 이번에는 폭염과 코로나19의 감염이 다시 급증하고 있다.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약 30년 전 쯤 처음 방문한 이후 여러 차례 답사했던 강화도의 풍경을 스케치기행으로 다시 기록해본다.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듯 섬 전체가 역사와 전설로 가득하고 사적과 문화재가 많은 섬이다. 그리고 서울에서 거리도 가깝기 때문에 주말에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가볍게 답사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한반도에서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수탈을 겪은 지역이기도하고 권력을 잃은 왕과 그 친족들이 귀양살이를 살다가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사연이 깃든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글픈 역사를 딛고서서 오늘날의 강화는 가 볼만한 장소로 변신 중이며 갯벌이 드넓은 특유의 섬 풍경으로 방문객을 환영해주는 듯하다.

 

 

◇ 전등사

 

강화도를 검색하면 함께 떠오르는 오래된 사찰 이름이다. '등불을 전한다'는 이름의 전등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창건된 진종사에서 유래할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이다. 여기 저기 유구한 세월을 버텨온 듯 아름드리 나무들이 전등사의 건축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기에 완벽한 구도의 사진들이 만들어진다. 한 때 유실될 뻔했던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자랑스러운 건물들이 저마다 이름 말미에 전, 각, 암, 당, 루라는 훈장 같은 이름을 달고 경사지마다 늠름하게 배치되어 있고 신록의 계절을 맞아 푸르름이 경내에 가득하다. 무심히 올려다 본 대웅전 처마에는 이 곳을 중건한 도편수의 마음을 빼앗고 달아난 미모의 주막여인이 나부상으로 변신하여 오늘까지도 지붕을 떠받치는 형벌을 견디고 있다. 처마 끝에는 풍경이 은은한 소리와 형상으로 흔들리며 고즈넉한 사찰분위기를 고조시킨다.

 

 

◇ 강화성공회 성당

 

 

서양종교의 건물이 한옥으로 지어진 특이한 사례로 1900년 트롤로프 주교가 설계, 감독했다고 한다. 학창시절 서양건축사 시간에 암기했던 내부공간의 이름들 즉, 나르텍스, 네이브, 아일, 등을 다시 읊조리며 구경한 바실리카양식은 한옥의 형식 속에도 그대로 투사되어 있다. 상부 클리어스토리에서의 채광은 목재로 마감된 내부공간을 밝고도 엄숙하게 만든다. 백년의 숨결이 마루에서 시작하여 목조기둥을 타고 천장 대들보에 이르기까지 나무냄새로 오랜 세월을 체감하게 한다. 현관입구에서 지난 세월을 함께한 보리수나무 아래에 서면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을씨년스럽지만 겨울풍경이 더 좋다.

 

 

◇ 용흥궁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임시거처(잠저, 潛邸)로 내전과 외전, 그리고 별전이 각 한 채씩 검소하게 모여 있다. 조선 후기에는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기거하던 곳이며 그 이후부터 궁이라고 고쳐 부른 이름이다. 마당과 출입문 그리고 레벨차이에 의한 계단과 담장 등 전통살림집의 유형들이 잘 보존되고 있고 별전 툇마루에 한가득 엎질러진 가을 햇볕이 잠시 쉬어가라고 피곤한 방문객에게 휴식을 권유한다. 주변 나무들은 다가올 겨울을 앞두고 마지막 단풍의 축제를 벌이며 한바탕 요란하다.

 

 

◇ 고려궁지

 

 

고려가 몽고에 줄기차게 항전하던 39년간의 궁궐터로 항쟁의 역사와 국난극복의 교훈을 담고 있다. 몽고친화 후 궁궐과 성은 허물었고 병인양요 시절에 조선궁전 건물들은 소실된 이유로 지금은 허허벌판인데, 을씨년스러운 빈터에 건축기단과 계단을 제외하고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복원한 외규장각이 서 있지만 수난의 역사가 되풀이되던 장소라서 그런지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은 차분해진다.

 

 

◇ 광성보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로 천도한 후에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터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 중 하나다. 이 곳 돈대는 신미양요 시절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는 미국로즈함대와 맞서 싸우던 장소라서 대포도 보이는데 그 함성소리를 상상하기에는 사방이 너무 고요하다. 한 바퀴 둘러보며 조용히 산책 할 수 있는 감성적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조용히 앞서 걷는 커플과 산책로 주변에 돗자리를 깔고 쉬어가는 가족들을 보니 부럽다.

 

 

◇ 고인돌 유적지

 

 

강화도 역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유산으로 우리는 단숨에 수만 년 전의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인돌은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지만 공동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혹은 제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갈대숲사이로 난 진입로를 걸어 도착한 이 곳에는 넓은 초원 위에 거대한 원시거석이 중력을 거부한 듯 표류하고 있다. 이렇게 강력하고 꾸밈없는 원시거석은 마치 초현실주의의 미니멀한 설치미술작품처럼 현대와 원시의 장벽을 뛰어넘는 언어로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 석모도

 

 

지금은 석모대교가 섬을 이어주고 있지만 몇 년 전 만 해도 석모도로 가기 위해서는 외포리 선착장에서 차량과 함께 바지선에 승선해야 했다. 배를 타고 건널 때 10여 분 의 짧은 시간이지만 갑판에 올라 새우깡을 던지며 갈매기들과 교감하는 체험도 유쾌했었다. 석모대교의 편리함이 등장하면서 이런 일상들은 더 이상 없다. 결국 우리가 편리라는 것을 취하는 순간 또 다른 가치는 증발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석모도를 돌아보면 크지 않은 섬이지만 볼거리들이 제법 많다. 물이 빠진 갯벌은 붉은 칠면초가 메우고 있고 그 건너에 강화의 산들이 중첩되어 하늘의 구름과 함께 수묵화 한 폭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한 겨울 함박눈이 쏟아질 때 다시 이 곳을 방문하면 어떨까. 눈 속에 함몰되는 석모도 풍경도 아름답겠다고 상상해본다.

 

석모도의 자랑인 민머루 해수욕장에 썰물 때에 도착했다. 모래밭, 자갈밭, 개펄의 순서로 끝없이 펼쳐지는데 너른 개펄 끝까지 멀리 나가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분히 초현실적인 모습이다.

 

 

◇ 보문사

 

 

석모도 보문사는 급경사지에 위치해서 수많은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수고가 필요한데 대웅전 뜰에 오르니 벌써 숨이 벅차다. 여기서 어부가 건져 올린 돌덩이 이야기로 구성된 보문사 창건설화를 스님으로부터 설명을 들어본다. 숨을 고른 후 다시 480계단을 딛고 가파른 산을 오르면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처마아래에 마애석불좌상 부조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멀리 바다와 갯벌을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석불좌상의 무릎아래에는 많은 불자들이 저마다의 소망을 기원하고 있다. 대웅전 앞 뜰 한쪽에 위치한 오백명 나한상들의 다양한 표정은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데 비해 적혀있는 소원들은 하나같이 기복으로 다분히 획일적이다.

 

 

 

◇ 동검도

 

 

강화도의 숨은 보석이라 불리는 남동단에 위치한 아주 작은 섬이다. 한 차례 소나기가 쏟아지고 난 동검도는 인근의 작은 섬들과 갯벌로 이어지며 고요하고 평화롭다. 배 한 척이 밧줄에 묶여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죄수인 양 결박당한 채로 구속 중이다. 밀물이 되어 배를 띄우는 시간까지 기다림은 계속되는데 멀리 떠있는 고깃배들이 부럽다. 제방에는 갈매기들이 모여앉아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동검도에서 시간은 잠시 정지되어 있다.

 

강화도는 지리적으로 북쪽 지역과 인접해있다. 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가 있다. 3층 전망대에 오르면 강 건너 황해도 연백평야와 개풍군, 멀리 개성송수신 탑과 송악산의 머리도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옥외벤치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니 강 너머가 바로 북한 땅인데 옥외스피커에서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이 흘러나온다. 금강산이 그리운 줄은 모르지만 생전에 꼭 가보고는 싶다. 강화에서 몇 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고려와 조선의 오랜 역사에 비하면 남북한 분단의 세월은 어쩌면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남북경협의 화해무드가 한 때 상승곡선을 타더니 경직된 이 후 현재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산가족의 아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성강은 오늘도 묵묵히 흘러갈 뿐 말이 없다. 강물도 세월도 참 무심하다.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 글·그림 임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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