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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㉛ 여행과 스케치

[웹이코노미=글·그림 임진우] 코로나19 사태로 여행중단이 상식이 된 요즘, 여행지에 대한 소감을 공유하기가 조금 부담스럽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여행의 의미를 곰씹어보고 내가 다녀왔던 여행지에 대해 기억을 소환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누구나 평소에 출장이나 여행을 떠나지만 나의 경우, 여행을 조금 더 즐기는 방법은 스케치와 함께하는 여행이다. 그래서 나는 해외출장이나 국내 여행 시에 늘 작은 스케치북과 휴대용 수채화 세트를 우선적으로 챙긴다. 도시나 자연의 풍경을 작은 스케치북에 담는 일이 내게는 일종의 경건한 의식을 진행하는 일이다.

 

타지에 나가면 잠자리가 바뀌거나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 잠을 설치게 되는 날이 많다. 이런 시간에는 새벽에라도 호텔 객실 테이블에 앉아 그 전날 답사했던 장소들을 중심으로 휴대폰 사진을 참고하여 마음에 담아두었던 풍경을 기록하곤 한다. 이 때 그 도시와 관련된 역사를 검색해보고 답사소감도 곁들여 문장으로 기록하면 간단한 여행칼럼이 된다. 그렇게 연재해온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칼럼이 어느덧 31회를 맞이했다. 31가지의 맛으로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B 아이스크림 광고처럼 취향에 맞는 여행지를 선택해 읽는 재미를 독자들께 선물하게 되어 기쁘다.

 

여행 중에는 그 지역만의 특색을 나만의 시선으로 잡아내서 표현하고 싶은데 우리 도시는 여느 타국의 도시에 비해 특징이 부족한 편이다. 특히, 지방도시는 개별적인 특성과 정체성이 모호한 곳이 많다. 지방 어디를 가도 매력을 잃은 풍경들과 몰개성한 아파트가 풍경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전국 유명사찰 앞에 위치한 기념품 가게에는 그 사찰의 매력과 잠재력은 실종된 채, 특징이 없고 조악한 중국산 수입기념품들이 비슷비슷하게 진열되어있다. 서글픈 우리 명소와 관광지의 자화상이자 현 주소다. 하지만 국내여행지 중에서도 장소적 특징을 잘 나타낼 수 있고 감성이 머무는 곳을 만나면 부지런히 스케치로 기록해왔다. 이번 칼럼은 옴니버스 식 구성으로 국내와 해외의 여러 장소들을 스케치와 함께 간단하게 요약했다.

 

나는 앞으로도 글과 스케치를 통해 마음으로 보는 여행을 즐기려고 한다. 스케치와 함께하는 여행은 내게 감성을 한 단계 높여준다. 여행이 주는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는 방법 중에 하나다. 결과적으로 여유가 많아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림으로서 여유를 만들어간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고양시] 내가 사는 동네인데 전원과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맑은 날은 하늘이 볼 만 하다. 퇴근 무렵에는 석양노을이 표현하기 힘든 색상으로 아름답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가끔 하늘을 관찰하고 감상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부암동] 부암동 깊숙이 조용한 동네에 격조가 있는 미술관이 하나 있다. 이 미술관을 가려면 동양방앗간 앞을 지난다. 경사길 아래로 내려가면 수화 김환기(1913~1974)선생을 기념하고 작품을 전시하는 환기미술관이 나온다. 재미건축가 우규승의 작품으로 모든 공간이 간결해서 좋다. 요즘처럼 화창한 날, 환기미술관의 답사는 분주하기만 한 삶에 추상의 여백을 만들어준다.

 

 

 

 

[성공회 서울 성당과 명동성당] 성공회성당은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지어진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이다. 이에 비해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명동성당은 수직적인 모티브가 인상적이며 두 곳 모두 바쁜 현대인들에게 장소적 안식을 제공한다. 남산 서울타워가 보이는 골목에는 명동교자, 충무김밥 등 유명한 맛 집과 패션 상가들이 도열해 있다. 복잡한 간판, 언제나 북적이는 인파... 다이내믹 명동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뮤지엄 산] 강원도 원주시 오크밸리 내에 뮤지엄 산이 있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하여 산 위에 지어진 미술관으로 하늘과 가까이 마주하는 곳이다. 산 정상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향해 걸어가는 과정은 주변 경관도 훌륭할 뿐 만 아니라 마치 순례의 길처럼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이 길에서 만나는 희고 가녀린 몸매를 지닌 자작나무들은 봄기운에도 불구하고 창백하다. 뮤지엄 산은 일상에 지친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장소로도 부족함이 없다.

 

 

 

[강릉과 주문진] 강릉은 서울역에서 KTX로 2시간이면 도착한다. 경포대 앞의 넓은 모래사장에는 깊게 파인 발자국들이 묘한 문양을 만든다. 파도를 보면 “지나간 자욱 위에 또 다시 밀려오며....(중략) 포말로 부서지며 자꾸만 밀려오나.”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썰물이 부른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라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주문진의 바다마을과 하늘과 파도는 묘한 3중주의 하모니를 연출한다.

 

 

 

[인천공항] 이제 해외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공항은 기대와 설렘의 장소다. 익숙했던 장소로 부터 작별하고 새로운 환경으로 출발하는 경계에 공항은 존재한다. 공항 탑승구 앞 게이트에서 대기시간이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출발을 앞둔 많은 여행객들의 표정에서 목적지를 향해 부풀어있는 기대감이 읽혀진다. 공항은 떠난 이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장소다. 환영홀에는 그리운 대상을 만나기 위해 마중을 나온 많은 이들의 기다림이 존재한다. 여행자들은 무거운 짐가방 만큼이나 오랜 여정에 지친 몸으로 돌아온다. 아이러니하지만 돌아오기 위해 떠나야 하는 곳이 공항이다.

 

 

 

[홍콩] 홍콩은 초고층 현대건축의 첨단과 도심 뒷골목의 재래식 풍경이 공존하고 있는 도시다. 빅토리아 하버에서 바라본 홍콩도시는 매력적이며 특히 화려한 조명 쇼가 진행되는 야경은 압권이다. 이미 국제적인 명소가 되어 관광객들에 인기 만점이다.

 

 

 

[마카오]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라는 수식어와 함께 화려함과 럭셔리로 치장된 도시다.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고 동시에 관광과 도박으로 잘 알려진 숙박과 유흥의 천국이다. 다양한 명소와 함께 과장된 현대건축 어휘로 이루어진 수많은 호텔의 야경은 가히 유혹적이다.

 

 

 

[칭다오] 칭다오는 맥주이름으로 유명하다. 코미디 방송에서 한 개그맨의 '양꼬치 앤 칭따오'라는 애드리브에도 자주 등장해서 친근하다. 바다를 면하고 있는 칭다오의 도시 분위기는 독일의 영향 때문인지 유럽의 여느 도시와 흡사하다. 칭다오 맥주병의 상표를 잘 살펴보면 작은 누각이 그려져 있다. '후이란거, 回瀾閣(회란각)'라는 이름의 이 누각은 팔각형의 2층 건물로 잔교(棧橋)의 끄트머리에 위치하며 청도 10경 중 으뜸으로 꼽힌다. 기다란 잔교와 후이란거, 그리고 그 배경에 초고층 빌딩의 도시가 오버랩되는 다소 묘한 풍경은 칭다오의 대표적 상징이다. 과거와 현재가 잔교로 이어져있다.

 

 

 

 

[싱가포르] 맛집과 쇼핑의 천국이다. 특히, 여행 초보자들에게 좋은 여행지로 도시규모는 작지만 질서 정연하며 청결하다. 거장 건축가인 모세샤프디가 디자인 한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에서 내려다 본 도심은 아름답고 견실한 건축물들로 가득하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 접경지역인 조호바루에서 통관절차를 거쳐 편하게 입국이 가능하다.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랜드마크로 있는 쿠알라룸푸르 시내에서 약 30분 떨어진 곳에 행정도시인 ‘푸트라자야’가 있다. 푸트라 모스크는 어느덧 랜드마크로 자리한다. 한 낮에 방문해서 더욱 무덥고 습한 기억과 기도 시간에는 길거리도 한산해지는 말레이시아의 첫인상이 그림파일 속에 함께 저장되어있다.

 

 

 

 

 

[필리핀 세부와 보홀섬] 필리핀의 휴양지 중에 인기가 높은 핫플레이스다. 시간이 정지된 듯 모든 풍경이 한가롭고 여유롭다. 바닷가 인근에 호텔 주변을 산책하다가 노천카페에서 맥주 한 잔 주문하고 풍경을 스케치하던 나를 신기하게 구경하던 원주민들, 배를 타고 호핑투어를 나가면 하늘의 구름과 바다물결 사이에 유유자적하는 조각배는 그동안 분주하게 살아온 내게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늘 문명과 원시자연의 경계에 서면 생각이 깊어진다.

 

 

 

 

[미얀마 양곤] 미얀마 최대의 도시로 정치, 경제 활동의 중심지다.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랑군’이었으나 1989년 양곤으로 개칭했다. 도심지를 답사하다가 느낀 점은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인지 외부벽체에 곰팡이균으로 오염된 건축물이 많다는 점이다. 서민아파트의 발코니는 어지럽고 복잡하지만 그들만의 검박한 삶이 오롯이 담겨있다. 초라한 주거시설과는 상대적으로 대규모 불교사원인 쉐다곤파고다는 금빛으로 휘황찬란하며 현세와 소망의 간극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양곤시민의 정신적 지주이자 미얀마의 랜드마크다.

 

 

 

 

 

[체스키크롬로프] 체코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200여 km 떨어진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근처에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까다로운 '체스키크롬로프'라는 전통적인 성곽마을이 있다. S자로 완만하게 흐르는 블타바 강이 내려다 보이는 작은 도시로 붉은색 계열의 경사지붕과 뾰족탑이 어우러져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후기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이 즐비한 이 마을은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이 좁은 길에는 커피와 함께 식사를 제공하는 카페들이 있고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이 많아 관광객들의 입과 눈을 즐겁게 한다. 때로는 답사일행으로부터 이탈해서 햇볕이 좋은 강변 벤치에 홀로 앉아 게으름을 피우며 슬로우 라이프를 체험해보아도 좋겠다.

 

 

 

[아프리카 케냐] 아프리카 지역은 여행지로 나서기에는 좀처럼 어려운 곳이다. 마사이 마라 지역에서 사파리 투어를 위해 전용 SUV에 옮겨 타고 드넓은 평원을 누비는 모습은 흡사 현대식 사냥꾼과 다름없다. 관광객들의 손에는 사냥총 대신 카메라가 들려 있고 초식동물 뿐 아니라 맹수들도 아주 가까이에서 뷰파인더 안에 포획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드넓은 평원을 누비며 TV 다큐멘터리 채널에서만 보아왔던 장면을 야생에서 직접 풍경으로 만나보는 경험은 이채롭다.

 

 

 

[멕시코시티] 라틴아메리카의 심장부로 일컫는 멕시코의 수도. 식민지 시대의 영향으로 바로크 양식 같은 신고전주의 스타일이 도시에 건축적 맥락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도심지 중심에 위치한 소칼로 광장은 유럽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이다. 알라메다 공원까지 걸어가며 느껴지는 가로분위기는 멕시코인들 특유의 밝은 모습과 다양한 표정과 강렬한 원색을 사용한 건축물을 복합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 가히 매혹적이다.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 글·그림 임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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