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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공공기관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㉗ 순천만 갈대밭과 소록도

 

[웹이코노미=글·그림 임진우] 순천만 생태공원은 사시사철 탁 트인 천연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가을을 맞아 억새와 갈대의 푸르름이 퇴색해가는 시점이라면 감성은 고조되어 가슴속에 느낌표 하나가 저장된다.

 

 

평소에 익숙함에서 탈출한 색다른 풍광이 펼쳐지는 장소 앞에서 자연이 선물한 깊은 매력에 누구나 흠뻑 도취된다. 이 곳은 국가명승 제41호이며 해양수산부 지정 습지보호구역이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160만평의 갈대밭과 690만평의 갯벌로 이뤄져 있는 철새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게이트를 통과하면 넓게 조성된 잔디밭 사이를 지나 생태습지공원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발걸음보다 마음이 먼저 분주해진다. 순천만 천문대, 자연생태관, 순천만역사관을 지나면 갈대숲과 갯벌로 이어지는 무진교가 방문객들을 기다린다.

 

 

그 다리 아래에는 생태탐사선 매표소와 선착장이 있어 이 곳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난 물길을 따라 선상에서 바라보이는 습지를 감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순천만 갈대밭을 탐방하는 방법은 발품을 팔아 무진교를 건너 목제 데크를 따라 걸으며 갈대밭을 지나 멀리 보이는 용산전망대까지 올라가는 보행로를 권장한다.

 

 

무진교를 건너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순천만 갈대밭이 드디어 눈앞에 펼쳐진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갈대의 움직임과 사각거리는 소리는 방문객들의 시청각을 자극한다. 장엄한 자연의 대서사시이자 교향악이다. 가까이에서 보이는 갈대 잎의 디테일이 시각이 멀어지는 시점에서 수 천 개로 확장되었다가 점진적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농담의 연속적인 변화에 의해 율동적인 공간효과를 얻는 그라데이션(gradation) 기법을 경험한다.

 

어느 설치미술의 거장이라도 이러한 랜드아트 앞에서 겸허하지 않을 수 없다. 가을의 한낮 햇볕이 따갑고 눈이 부시다. 그늘이 없으니 양산과 챙 모자를 준비한 방문객들이 부럽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그래서 더욱 시원하게 느껴진다. 중간중간 벤치가 있는 쉼터가 있어서 걷다가 쉬다가, 산책은 더욱 여유로운데 이런 그림 같은 풍광 속에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은 멜로 영화의 한 장면이다. 순천만습지는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갯벌 생태계의 보고답게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가 되고 있다.

 

 

썰물로 물이 빠진 갯벌에서 짱뚱어와 작은 게들이 노니는 모습을 보행 데크에서 동심으로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갈대밭과 갯벌로 이어지는 탐방로의 마지막 압권은 용산전망대에서의 조망이다. 조감도로 내려다 보이는 순천만의 지형은 마치 연잎처럼 둥근 땅들이 물로 연결되어 있는 형상이다. 이때쯤 낙조가 연출된다면 금상첨화. 이 연잎들은 서서히 금빛으로 물들어간다. 전망대까지의 답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다시 되돌아보니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하나 더 체험한 듯하다. 날아가는 철새들의 날갯짓은 이 곳에서 다시 만나자는 의미일까? 다시 오겠노라 마음속으로 약속하고 답사의 발걸음은 남쪽을 향한다.

 

 

순천에서 이동하여 남해 쪽 고흥군에 가면 많이 들어봐서 귀에 익숙한 소록도가 있다. 소록대교를 건너면서부터 마음이 가볍지가 않다. 지형의 형상이 작은 사슴을 닮아 이름 지어진 소록도지만 그 이름처럼 예쁘지만은 않은 사연을 간직한 섬이기 때문이다. 이 곳에는 나병, 문둥병으로 불리며 불치병으로 평생을 격리되어 살아야 했던 한센인들의 아픔이 슬픈 역사와 함께 곳곳에 배어있다.

 

 

 

바다풍경을 따라 해송이 도열되어있는 소록해안길은 인상적이다. 늦가을 오후 햇볕이 목제 난간의 그림자를 길 위에 길게 드리우고 있다. 나무 데크로 포장된 진입로를 걸으며 안내자에게 소록도의 지난했던 역사를 듣는다.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던 한센인들의 억울한 사연들을 듣게 되고 이어서 도착한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자료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조금 떨어져 위치한 감금시설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는데 이 시설에 들어서면 그 안에서 자행된 해부와 검시, 강제노역, 폭행과 단종수술과 같은 인권유린의 흔적들을 목도하게 된다. 일행들의 소리 없는 탄식이 느껴진다. 지난 세월을 품고 담쟁이넝쿨로 덮인 채 퇴색한 붉은 벽돌의 감금실, 그리고 녹슨 철창살들이 비명과 신음을 굴곡의 역사에 가둔 채 존치되어 있다. 강제수용을 당한 지 100년이 지난 오늘날은 섬 안에 병원도 지어져 질병은 현대의학으로 완치되고 건강 관리를 받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환우들은 외부와의 왕래를 줄이고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지역에 살고 있다.

 

 

건축가 조성룡은 소록도의 상황을 답사 후 점검하고 복원보다 보존과 재활용을 강조하며 풍화되고 소멸되지 않도록 일단 시간을 붙잡아 두는 일이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공감한다. 또한 그의 저서 ‘건축의 풍화’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건물은 지어지는 순간부터 풍화라는 과정을 통해 퇴화하고 소멸에 이른다. 비와 바람, 더위와 추위는 건물의 풍화작용을 재촉한다.

 

돌, 벽돌, 나무처럼 오랫동안 건축 재료로 쓰던 것들은 풍화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들이 무릇 건축재료뿐이겠는가? 100년 전 아픔을 겪던 환우들과 유린한 자들 역시 자연으로 돌아갔음을 소록도는 남아서 역사로 증명하고 있다. 가을 햇볕 좋은 날에 바람조차 살랑이지만 답사를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오히려 가슴속에 묵직한 모과열매 하나가 매달려있는 기분이다.

 

한 평생을 오해와 편견 속에서 차별과 단절을 겪어야 했던 한센인들의 슬픈 역사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다. 낯선 나라에서 평생을 보내고 조용히 떠나신 마리안느와 마가렛 님과 같은 자원봉사자들의 아름다운 사연들은 어린 사슴의 슬픈 눈망울로 남아 오래 각인될 것 같다.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 글·그림 임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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