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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공공기관

[단독] ‘내부 고발’ 관세청 사무관의 외로운 사투…“7층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삼성重 민원 업무 배제 위한 ‘사무 분장’ 꼼수…내부 감찰 문건은 ‘부실 투성이’

 

[웹이코노미=신경철 기자] ‘127일’

 

박준희 관세청 사무관이 ‘삼성중공업 관련 민원’을 거절한 이후 2016년 9월 13일부터 2017년 1월 17일까지 ‘탕비실’에서 근무했던 기간이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기업 민원을 뿌리치자 사기업에서도 근절된 지 오래인 ‘벽면 근무’와 유사한 보복을 당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지난 4일 웹이코노미는 관세청이 1조원 이상의 국고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보세공장원재료’ 관련 규제를 풀어주려고 시도한 의혹에 대해 다뤘다. [본지 10월 4일자 [단독] 관세청, 삼성重 최대 5000억 환급 시도 정황…靑 민정수석실 “현재 조사 중 참조]

 

당시 박 사무관은 관세청 감찰실에 관련 내용을 신고하고 “거짓일 경우 내가 옷을 벗고 모든 처분을 달게 받겠다”며 철저한 감찰을 주문했지만 이 사건은 외압을 받은 사람만 있고 외압을 가한 사람은 없는 사건이 돼버리고 말았다.

 

이를 두고 관세청은 박 사무관의 폭로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감찰에서 해당 의혹을 조사한 결과 사실 관계를 확인할 만한 증거가 없고, ‘전원 무혐의’로 결론이 난 사안을 두고 박 사무관이 왜곡된 일방적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사무관의 폭로와 관세청의 반박 사이에 양쪽 주장의 근거가 무엇이고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 박 사무관, 인천공항 T2 업무 ‘날벼락’…관세청, ‘전보 발령’ 대신 ‘사무 분장’ 편법 동원

 

본지가 단독 입수한 ‘관세청 내부비리 고발’ 문건에 따르면 2016년 9월 13일 관세청 직원은 박 사무관에게 “수출입물류과 소속에서 특수통관과로 전보 이동됐다. 다만 전보제한규정에 걸려 발령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빈자리가 있어도 줄 수 없다는 지시를 받았다”며 정수기와 냉장고 등이 치워진 탕비실로 자리를 안내했다.

 

공무원임용령 45조에 따르면 공무원은 필수보직기간(3년)을 거치지 않으면 타 부서로 이동할 수 없다. 당시 박 사무관은 필수보직기간이 2년 가량 남아 있었다.

 

관세청은 박 사무관을 특수통관과로 발령을 낼 수 없게 되자 특수통관과가 주축이 된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T2) 개장 준비 T/F’에 박 사무관을 포함시켰다. 이를 두고 사정당국과 국회 일각에선 실질은 특수통관과로의 ‘전보 발령’이면서 ‘사무 분장’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박 사무관을 삼성중공업 관련 업무에서 손을 떼게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사무 분장은 담당 부서의 업무를 직원들에게 합리적으로 나누기 위한 것으로 공무원임용령 45조는 ‘전보 발령’ 이외에 과간 업무 이동을 금지하고 있다.

 

◆ 쟁점 1. 이 세관장 “고충 토로해 사무 분장” vs 박 사무관 “사실 아니다”

 

박 사무관은 갑작스런 ‘사무 분장’을 근거로 제시하며 “삼성중공업 민원을 거부한 직후 당시 이 모 통관지원국장(현 대구본부세관장)과 한 모 수출입물류과장(현 FIU 파견)이 특수통관과로 보복성 인사 조치를 내렸다”고 토로했다.

 

박 사무관이 ‘사무 분장’ 통지를 받기 직전 인천공항 T2 업무를 담당할 특수통관과 사무관으로 정 모 사무관이 내정돼 있었다. 정 사무관은 2016년 9월 12일 ‘특수통관과’로 발령 받은 후 같은 날 ‘수출입물류과’로 다시 ‘정정 발령’을 받았다. 사무관 인사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뒤 바뀐 것은 이 같은 의혹의 구체적인 정황 증거 중 하나라는 것이 박 사무관의 주장이다.

 

관세청 통관지원국은 통관기획과, 수출입물류과, 특수통관과 등 총 3개 과로 구성돼있다. 개별 과마다 4명의 사무관이 배치되지만 정 사무관의 ‘정정 발령’과 박 사무관의 ‘사무 분장’으로 당시 수출입물류과는 사무관이 5명, 특수통관과는 3명이 배치되는 기형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박 사무관의 실질 업무는 ‘인천공항 T2’로 변경됐지만 관세청에서 ‘전보 발령’이 아닌 ‘사무 분장’을 내린 탓에 서류상 소속 부서는 수출입물류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관세청 공무원들은 “사무 분장은 ‘과장 전결’(수출입물류과장) 사항으로 위에서(통관지원국장) 결정해 발생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당시 통관지원국장을 지낸 이 세관장은 “직원(박 사무관)이 한 과장(수출입물류과장)하고의 업무가 힘들다고 호소해 좋은 해결책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당시 T2 업무는 청장님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사항이라 박 사무관의 고충 등 관련 사안을 고려해 사무 분장을 한 것”이라며 “삼성중공업 민원 때문에 조치한 것은 절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사무관은 이 세관장에게 고충을 호소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입장이다. 박 사무관은 “한 과장이 7월 초에 수출입물류과장으로 왔다. 2달 사이에 담당 과장하고 그 건(삼성중공업 민원)을 제외하고 부딪칠 일이 뭐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고충을 말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이 세관장은 올해 1월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 조사에서 박 사무관의 ‘사무 분장’과 관련해 인사 상담을 진행했는지 여부를 추궁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 눈높이 시각에서 정부부처 사무관을 갑자기 다른 부서로 발령(또는 사무분장)을 내려면 인사 상담과 함께 관련 기록을 남기는 것이 정상이다. 인사 상담 서류 유무에 따라 한 당사자의 해명은 거짓일 확률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 쟁점 2. 관세청 “능력 부족 교체 요구”…관세청 보고 문건 ‘부실’ 논란

 

본지가 단독 입수한 관세청의 2018년 10월 5일 ‘보세공장 원재료 업무처리 관련 사실관계 보고’ 문건에 따르면 한 과장은 박 사무관의 사실 관계 파악 및 보고능력을 부족을 이유로 세 차례에 걸쳐 상부에 교체요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건은 3회 교체의 구체적인 이유로 ▲보세공장 규제개선 보고서에 대해 규제조정실 과장 등에게 창피당한 사례 ▲선라이즈 F&T 대응방안을 자체적으로 마련하지 못해 유관기관 및 타 부서가 방법을 알려준 사례 ▲개발원 요금조정 민원처리를 지연해 다른 부서에서 답변 등을 적시했다.

 

관세청은 이를 근거로 박 사무관의 사무 분장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본지가 관련 내용에 대한 사실 관계를 취재한 결과 ‘개발원 요금조정 민원처리’는 ‘특수통관과’ 업무로 당시 박 사무관이 수행한 보세공장 등 ‘수출입물류과’의 소관 업무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즉, 박 사무관과 관련 없는 사항이 교체 요구 사유로 들어간 것이다.

 

선라이즈 건 또한 박 사무관이 수출입물류과로 발령받기 전인 2015년 5월부터 논란이 제기된 사항으로 확인됐다. 특히 2016년 천홍욱 관세청장이 부임한 이후 특별 지시사항으로 수출입물류과에서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해 상부에 직접 보고를 한 것으로 전해져 유관기관 및 타 부서가 대응방안을 마련해 줬다는 것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총리실 규제조정실 과장에게 창피를 당했다는 사례인 보세공장 규제 건은 내부 인원만 조사하는 감찰 현실 상 총리실 담당 과장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했는지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이다.

 

보고 문건에서 사실과 다른 대목은 이 뿐만이 아니다.

 

관세청 감찰실은 “한 과장의 (삼성중공업) 보세공장 원재료 인정 압력 행사는 사실 무근”이라며 그 근거로 ▲(한 과장의) ‘WTO 보조금 관련 조언’은 민원인도 이미 알고 있는 점 ▲‘정 모 전(前) 부산본부세관장(현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소속)의 체면을 위한 민원업체 출장 지시 주장’은 지연된 질의를 신속 처리하기 위한 것으로 불필요한 출장으로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꼽았다.

 

본지가 확보한 박 사무관과 해당 민원인(전직 관세청 공무원,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소속 관세사)과의 녹취록에 따르면 민원인은 당시 한 과장의 ‘WTO 보조금 관련 조언’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정황이 드러났다. 관세청 감찰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이다.

 

전직 관세청 고위 공무원의 체면을 위한 민원업체 출장 지시 또한 담당 공무원은 충분히 민원 처리에 대한 압박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관련 의혹을 ‘사실 무근’의 근거로 삼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정황을 두고 일각에선 관세청이 처음부터 제대로 된 감찰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 박 사무관 “당시 7층서 뛰어내리고 싶었다”…이 세관장 “탕비실 배치 몰랐다”

 

“혹시 7층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적 있으세요? 제가 관세청에서 30년 가까이 근무를 하며 이런 창피는 처음입니다. 삼성중공업 민원 건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갑자기 담당 공무원을 탕비실로 자리를 옮기라니요. (당시)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박 사무관은 본지에 이 세관장과 한 과장의 외압 사실을 제보 하면서 당시 심경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박 사무관이 소속된 통관지원국은 정부대전청사 7층에 위치해 있다. 관세청은 왜 박 사무관에게 인격적으로 망신을 주는 ‘탕비실’ 배치를 지시한 것일까.

 

모범공무원(2012년), 올해의 관세인(2013년)에 선정된 박 과장의 보고 능력이 부족하다는 관세청의 주장이 전부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업무 분장의 실질적 결정권자인 이 세관장은 탕비실 배치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내가 탕비실에 있으라고 한 것도 아니고 탕비실에 자리가 배치된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부인했다.

 

이에 대해 한 관세청 관계자는 “담당 국장이 소속 사무관의 (탕비실) 배치를 4달 동안 몰랐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꼬집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원실 관계자는 “관세청과 내부고발자의 주장이 다르다면 결국 사정당국이 나서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할 것”이라며 당국의 신속한 조사를 촉구했다.

신경철 기자 webeconom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