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웹이코노미] 김영섭 기자 = 환경부가 국비와 지방비를 합해 총 1조 2073억원 예산으로 야심차게 4년째 진행해온 지방상수도 스마트 관망관리사업(이하 스마트 상수도사업)에 중대한 경고등이 켜졌다. 올해 마지막해를 맞은 이 사업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익차형 디지털 수도계량기에 자석을 갖다 댔을 때, 자석이 붙어 있는 동안 수돗물을 계속 사용하는 데도 해당 계량기는 사용되는 수돗물 계측을 하지 못해 전자표시부 작동을 일시 멈춘 것을 실제 확인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에 납품되는 디지털 수도계량기는 당연히 정부가 고시한 수도기준에 따라 형식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더욱이 전자표시부 자체가 잘못 계측되면 이를 토대로 한 원격검침 시스템도 자동적으로 문제가 된다. 3년 여 전 시작한 스마트 상수도사업 전체를 원점에서 진단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디지털 계량기의 작동을 일시 중단시킨 이 자석은 표면 자기장 4500가우스(gauss, 기호G) 자력 세기와 손바닥으로 감싸 안을 정도의 조그만 크기를 갖고 있다. 시중 자석가게에서 누구나 단돈 몇 만 원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정부는 국제 수도기준을 따랐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가 준용했다는 국제기준 자체는 17년 전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근년들어 디지털 수도계량기에서 자석 부품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됐는 데도 정작, 계량기 자석 부품을 규제하는 외부 자기장 기준은 20년 가까이 하나도 변하지 않고 똑같았다는 얘기다.
한 정부 관계자는 표면 자기장 기준 약 1200가우스의 현 수도기준을 넘어서는 자력 세기의 자석을 갖다 대면 "계량조작 불법행위"라는 원론적 반응을 보였다. 나아가 이 관계자는 "전자계량기 자체를 망가뜨리는 행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판단"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석을 떼면 계량기는 다시 정상 작동했다. "기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부의 수도기준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된다.
■ 디지털 수도계량기, 몇만원짜리 자석 대면 대부분 작동 멈춰…100만대 추산 '문제 계량기' 교체시 천억원대 이상 예산낭비 우려
14일 여러 경로의 취재 결과, 표면 자기장 4500가우스 자석의 영향을 받아 계측이 중단되는 디지털 계량기는 현재 설치된 계량기 10대 중 7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자기 집에 설치된 디지털 계량기에 4500가우스 자석을 갖다 대면 70% 정도는 수돗물을 사용 중인데도 ‘멈춰 선다’는 얘기다.
웹이코노미가 입수한 제보자 동영상을 보면 자석이 붙여진 계량기는 수돗물이 정상적으로 흘러감에도 계측을 못해 계기판이 중단됐고 자석을 제거하면 다시 정상 작동했다.
제보자는 충청남도 감사위원회 도민 감사관 홍순민 회장이다. 2022년 9월 홍 회장은 정부의 스마트 상수도사업으로 디지털 수도계량기가 설치된 충청권 일반 가정집을 방문해 영상을 촬영했다고 말했다. 영상에 사용된 자석은 표면 자기장 4500가우스 세기의 네오디움 자석이다.
실제 영상을 보면 자석이 계량기에 붙는 동안에는 계량기 윗부분 전자표시부의 숫자가 멈춰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자석이 붙여져 있는 동안 전자표시부가 멈춰 선 가운데서도 수돗물은 정상적으로 사용됐다. 자석을 떼면 다시 전자표시부를 포함한 수도계량기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수도계량기 계측 중단 문제는 조작방지 캡을 씌워도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 회장은 웹이코노미 취재진과 만나 “충남도 도민 감사관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디지털 수도계량기에 자석을 갖다 대면 멈춰선다는 제보를 받고 해당 지자체 공무원의 협조를 얻어 영상을 찍은 가정 집을 방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내 전체 수도 계량기 업체 57곳 가운데 7곳 정도만 4500가우스 자석을 갖다 댔을 때 외부 자기장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자체 파악됐다. 또 웹이코노미가 조달청 계약 상황을 자체 집계한 결과, 스마트 상수도 사업이 본격화한 2021년 1월부터 현재까지 전국에 설치된 디지털 계량기는 134만 8732개로 잠정 파악됐다. 이미 수년째 수자원공사와 각급 지자체는 디지털계량기로의 현대화 사업을 급속도로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조달청 계약을 업체별로 집계한 결과 현재 설치된 디지털 수도계량기의 70%에 해당하는 100여만 개가 4500가우스 세기 자석에 작동을 중단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 계량기' 교체에 드는 비용은 대당 계량기 값과 교체인력 인건비를 감안하면 10만원대에 근접할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설치된 것 가운데 교체한다고 할 경우 천억원대 이상으로 예산 낭비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익차형 디지털 수도계량기에는 수돗물이 통과하는 계량기 내부 격판 아래 임펠라 윗부분 안쪽으로 원형 자석이 접착돼 있다. 수돗물이 통과하면 임펠라와 함께 윗부분 자석은 동시에 회전을 하게 된다. 이후 격판 위에 설치된 MR센서가 자석 회전수와 회전력에 따른 자기 신호를 읽어들여 계측·적산해 전자표시부 숫자로 표출시키는 시스템이다.
■ 국가기술표준원 "수도기준 강화는 합리적 이유있어야…타국에 이유 통보 의무도"
정부는 수도계량기 MR센서의 자기 신호 관측 및 계측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자기장이 차단됐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디지털 수도계량기 정적 자기장시험 기준을 산업통상자원부 소속기관 국가기술표준원 법정계량기 기술기준 항목의 수도미터 기술기준(산업통상자원부 고시 제2022-167호(2022. 10. 14. 일부개정))에 명기해 놓고 있다.
수도미터 기술기준의 ‘5.10 정적 자기장시험(Static magnetic field)’ 규정을 보면 표면 자계장의 강도는 표면으로부터 1mm(밀리미터)에서 90∼100kA/m(킬로 암페어/미터)로 돼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따르면 이 수치를 표면 자기장 세기 단위로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가우스 단위로 환산하면 1128∼1254가우스에 해당한다.
국가기술표준원(기표원)은 수도기준과 관련, "정부의 수도미터 기술기준은 국제법정계량기구(OIML, Organisation Internationale de Metrolgie Legale) 기준을 그대로 준용한 것"이라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참여하고 있고 이 기준을 각 나라에서 준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기표원 관계자는 4500가우스 자석 영향과 관련해 "기술규제에 있어 제품 품질 유지에 필요한 부분은 조치를 당연히 할 수 있다"며 "다만 기술규제 부분에 있어서는 저희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기준을 올리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또 그 이유를 다른 나라에도 통보를 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래서 이런 것을 조정하는 데 있어서는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된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높여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높여야 한다는 것이 사실 한계가 없는 이야기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수도기준을 넘어선 4500가우스 세기의 자석과 관련해서는 "전문가들에게 문의한 결과 (4500가우스 크기의) 네오디움 (자석) 같은 것은 산업용이고 수도계량기 등 전자계기에 대면 안 되는 것으로 강조한다"며 "그것을 대는 것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제품 자체를 망가뜨리는 것이라는 데 모든 전문가들이 인식을 같이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 수자원공사, 제보 받고 ‘문제 없다’ 통보
"이게 계량조작으로만 인식될 문제인가" “알고도 무시하면 직무유기…기술발전 반영해야” 지적
OIML은 수도 기준을 회원국 등에 권고 사항으로 제시한다.
기표원 홈페이지 자료는 "OIML은 계량기의 사용 시 발생되는 행정상,기술상의 문제점을 국제적으로 해결하고 각종 계량기의 형식인증, 검정ㆍ검사제도 등 법정계량에 관한 국제권고, 국제문서 등을 개발 보급함으로써 법정계량(Legal Metrology) 제도의 국제적 통일을 도모하기 위하여 정부 간 국제기구로 설립됐다"고 설명한다. 2021년 1월 현재 정회원국은 61개국이며 준회원국은 63개국이다.
정부는 국제 수도기준을 준수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2006년 만들어진 OIML 권고 기준을 2010년 산업부 고시로 적용시킨 후 13년째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처음 세워진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17년 전 기준인 것이다.
특히 수도미터 기술기준에 대한 문제제기는 지난해 9월 이후 이어져왔지만 정부의 적극적 대응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게 웹이코노미 취재 결과 확인됐다.
앞서 지난해 10월 한 민원인은 디지털 수도미터기가 자석에 의해 계량기 작동을 멈추는 현상을 발생시키는지 여부를 묻는 정부공개 요청 민원을 충남 논산시에 제출하기도 했다.
또 웹이코노미에 동영상을 제보한 홍순민 회장은 수자원공사에도 지난해 9월30일 수도미터 기술기준의 정적 자기장 시험 규정에 대한 제보사항과 이를 증명하는 해당 동영상을 제출했다.
이후 수자원공사 측은 계량기 업체 관계자들과 정적 자기장 민원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수자원공사는 지난해 11월 8일 "우리 공사와 계약하고 납품된 디지털 수도미터는 검사 결과 '이상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란 내용을 담아 공식 회신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홍 회장은 이후 환경부와 기표원, 수도미터 기술기준 형식승인 기관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 관계자들에게도 '4500가우스 자석 자기장'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하지만 관계 공무원과 KTC는 해결책 마련에 적극 나서지 않고 소극적 반응을 보였다는 게 홍 회장의 설명이다.
홍 회장은 "수자원공사, 환경부, 국가기술표준원, KTC 등 관계 기관 관계자들에게 멈춰 서는 수도계량기 동영상을 보여줬음에도 기다리라고만 하고 6개월 넘게 실질적 대책 회의를 진행시키지 않았다"며 "수도기준을 벗어나면 단순히 계량조작 범죄행위라고만 인식한다면 급격한 디지털 전환 패러다임에서 어떻게 기술 변화에 따라갈 것이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동영상에서 나타난 것처럼 너무 쉬운 도수(수돗물 값을 내지 않고 사용) 문제점을 그대로 방치하는 결과에 다름 아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일부 과학기술계 인사와 일반 시민들도 정부의 수도미터 기술기준에 대한 인식과 이번 '동영상 사태'에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과학기술계 인사 A씨는 "수도계량기를 이렇게 쉽게 중단할 수 있다면 누구나 몰래 자석을 갖다 붙이려고 할 것"이라며 "자석뭉치를 갖다대 요금이 적게 나오면 정부 입장에선 손해가 막심하고 그럼에도 불법의 가능성이 계속 상존하는게 아니냐. 설사 조작한다 하더라도 사실이 사실인 것을 어떻게 하나"고 반문했다.
A씨는 또 "불법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지적이고 나아가 수도계량기 자기장 문제는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제기된 사안"이라며 "외국 같은 경우 외부 자기장 문제를 알기 때문에 현재의 OIML 기준이 있더라도 비자석식을 택하거나 자석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보급해서 사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대에 따라갈 만큼 기술이 따라가게 되면, 그 기술에 따라가는 규정도 만들어야 한다"며 "디지털 전기계량기처럼 외부 자기장 문제를 원천적으로 없애야지, 문제점을 알면서도 수도계량기에 옛날 기준을 그대로 쓰면, 이는 어떻게 보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50대 시민 B씨도 "물을 대규모 사용하는 업체의 경우 너무도 쉬운 방법으로 계량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이런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다"며 "정부가 이런 문제점에 노출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이 맞지, 현행 규정만 지킬 것을 강요하고 드러난 문제점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고 나아가 국민 스스로가 범법에 나서도록 조장한다는 비판밖에 더 받겠느냐"고 근본적 문제 해결책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