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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전자·화학

[기자수첩] 데이터 제로레이팅, 문제는 울타리의 높이

 

[웹이코노미=이선기 기자] 직장인 강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튜브 마니아다. 특히 인기 게임 BJ들의 방송을 즐겨 본다. 얼마 전 요금제를 바꾼 그는 이제 데이터 걱정 없이 유튜브를 마음껏 볼 수 있게 됐다. 요금은 기존 요금제의 절반 수준으로 저렴해졌다. 그가 가입한 요금제는 ‘유튜브 프리’ 요금제다. 유튜브 시청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기본 데이터는 1GB로 제한해 요금을 낮췄다. 데이터의 대부분을 유튜브 시청에 투자하는 강씨에게는 안성맞춤이다.

 

통신업계 화두로 떠오른 제로레이팅 전략을 놓고 임의로 가정해 본 미래다. 제로레이팅은 통신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CP)가 제휴를 맺고 특정 콘텐츠의 데이터 이용료를 면제 혹은 할인해주는 제도다. 데이터 이용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에게 특정 콘텐츠 이용료를 면제해줌으로써 요금 부담을 낮출 수 있다. CP는 데이터 이용료를 자사가 지불하는 대신 이용자를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통신사 역시 콘텐츠를 확보함으로써 가입자를 확대하거나 최소 유지할 수 있다. 한 이통업계 관계자는 “5G 망 구축 비용도 일부 절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제로레이팅이 데이터 이용이 급증할 5G 시대를 앞두고 통신비 인하 방안으로 새롭게 대두된 이유다. 속도가 최대 20배 빨라지고 사물과의 연결이 원활해지는 5G 시대에서는 그만큼 데이터의 소비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기기와 영역이 넓어지면서 데이터 소비가 적게는 수 배에서 최대 수십 배까지는 뛸 것으로 보인다. 제로레이팅은 이같은 환경에서 소비자와 통신사, CP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윈윈(win win)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제로레이팅이 활성화되면 이용자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맞춤형 요금제 설계가 가능해진다. 앞서 가정했던 유튜브 시청 전용 요금제라든지, 혹은 특정 게임사의 콘텐츠 전용 요금제 등이 등장할 수 있다. 여러 CP를 패키지로 묶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이용자의 데이터 사용 패턴에 따라 비슷한 콘텐츠를 묶어서 제공하는 것이다. 이용자는 통신사의 제로레이팅 CP 리스트를 보고 자신의 기호에 맞게 선택하고, 임의로 변경할 수도 있다. 마치 통신사업자가 콘텐츠를 큐레이팅하는 플랫폼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이상향 뒤에는 상대적으로 자본 규모가 적은 중소 CP의 생존력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데이터 비용을 떠안아야 하는 만큼 대규모 자본을 보유한 CP에게 밀릴 수밖에 없어서다. 이에 대해 한 이통업계 관계자는 "특정 CP와 제휴한다고 타 CP를 차별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제휴 서비스인 만큼 망 중립성에도 위배되지 않는다는 고자세를 취한다. 단순히 사업성에 따라 모든 CP에게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뚜렷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는 초기 스타트업에게 그럴 여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연스럽게 상위 CP 중심의 큐레이션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콘텐츠 플랫폼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선별해 주는 편리함을 제공한다. 제로레이팅은 이같은 맥락에서 통신 네트워크의 플랫폼화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뉴스 주제를 선별하는 것과 CP를 선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데이터 소비 선택지가 제로레이팅이라는 울타리로 제한된다면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CP는 자생력을 잃을 것이 자명하다.

 

최근 이통사들이 제로레이팅 카드를 하나 둘 꺼내들고 있다. 그동안 통신사 자체 서비스로 한정했던 영역을 외부 제휴로 확대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이통사들은 논란을 의식한 듯, 이번 제휴를 두고 ‘소비자 편의를 위한 이벤트성 혜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허나 향후 성과에 따라 전면적으로 활성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로레이팅은 분명 데이터 요금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자칫 이로 인해 CP 생태계에도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 뿌리를 내리게 될까 염려스럽다. 결국 문제는 울타리의 높이다. 모두를 위한 상생 방안이 진중하게 논의돼야 할 이유다.

webeconom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