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이코노미=글·그림 임진우] 중앙아시아의 터줏대감 격인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은 신 실크로드의 중심이자 신 북방정책의 주요 파트너로 국내 기업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건축가로서 해외출장의 기회는 종종 있지만 우즈벡은 처음이었고 신선했다. 이 나라의 경제여건과 정책변화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에는 농업, 자동차, 에너지 인프라, 의료 분야에 진출을 유망분야로 꼽고 있다.
역사가 깊은 도시라서 타슈켄트 시내에 보존되어있는 궁전이나 사원과 같은 고건축들은 건축적 완성도가 높은 편이지만 이에 비해 대부분의 일반적인 현대 건축물들의 수준은 과장된 건축어휘와 디테일 처리의 미숙으로 기대에는 못 미친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이 나라에서 밭을 갈고 있는 일반적인 부녀자의 외모수준이 우리나라의 유명 연예인 뺨칠 정도라는 소문은 사실무근이니 현혹되지 마시라.
조악하게 개발되는 도시보다는 오래된 유적지를 보고 싶다. 검색해보니 우즈벡의 이름난 3대 유적 도시로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그리고 히바(Khiva)가 있다. 우르겐치 공항에 내려 40분 정도 차량으로 이동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히바의 유적지 '이찬칼라'를 답사할 수 있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오래된 역사를 지닌 유적지는 존재감의 아우라가 대단하다. 투박한 황토벽의 성곽은 방어가 목적일진데 오히려 둥글고 완만한 곡면의 여유로움은 방문객을 환영하며 맞이해 주는 듯하다.
이 곳은 아무다리야강 하류에 위치한 호라즘 주(州)의 도시로 기원은 2000년 전 쯤으로 추정된다. 페르시안, 몽골, 이란, 러시아 등 여러 나라로 부터 수난을 받아 폐허와 재건을 거듭해온 이유로 현재 건물의 대부분은 18~19 세기의 것이지만 중앙아시아 중세도시의 양상을 잘 유지하고 있다.
성 안 내성에는 궁전과 마스지드(사원), 마드라사(신학교), 묘당들이 있고, 외성에는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직종별로 구역을 형성해 거주했다는데 건물들은 호라즘 제국의 전통적 건축기법과 아랍-이슬람식 건축이 융합돼 있다. 이 성곽도시는 전체가 박물관이란 평을 받을 정도로 많은 유적들이 분포돼 있다. 특히 아랍어로 '빛을 두는 곳, 등대'를 의미하는 '미나레트' 몇 개가 마치 성 안을 수호하는 장승처럼 높은 첨탑의 형상으로 성곽마을의 스카이라인을 지배하고 있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아랍의 전통문양은 건물의 곳곳에 아로이 새겨져 있고 신비스러울 정도로 고색창연한 푸른 빛깔의 색상은 거친 황토색 벽돌 벽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조화한다. 늦은 오후의 강렬한 햇빛은 방문객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려 자코메티의 작품 이미지처럼 성벽과 거친 보도에 중첩시킨다.
침략과 방어, 통치와 수탈... 거친 벽돌의 문양으로 이루어진 성곽의 광장바닥에서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이 일어났을까. 그렇게 이 자리를 지키며 목도해왔던 주변의 건축물들은 그 사건들을 모두 망각한 듯 무표정하게 서서 무심하게 침묵하고 있다.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뜸한 만큼 유적의 보존이 잘 된 곳이지만 언젠가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장소를 방문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을 담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지켜낼 수 있을까.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 글·그림 임진우 정림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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