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⑬ 밴쿠버에서 피달고 섬까지

  • 등록 2019.06.29 16: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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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이코노미=글·그림 임진우] 30년 전 쯤에 와 보았지만 너무 오랜 전이라 밴쿠버 공항은 처음처럼 낯설다. 공항에 내려 렌터카 업체를 찾아 곧바로 승용차를 빌렸다. 이곳저곳을 불특정하게 랜덤으로 다녀보려고 내비게이션을 검색하고 우선 시내에서 유명한 스탠리파크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요트가 가지런히 정박된 항구 저편에 고층빌딩이 즐비한 밴쿠버 특유의 익숙한 풍경이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공원에 나온 시민들의 산책은 여유가 있고 도시는 쾌적하다.

 

 

UBC근처 고대 인류학 박물관 'MOA'도 두 번째 방문이다. 캐나다의 대표건축가 아서애릭슨의 작품으로 건축디자인이 독특하고 전시공간은 섬세하다. 야외 전시물 중 토템을 표현하는 기둥형식의 투박한 조형물(Totem Pole)들이 매력적으로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 인근 숲 속에서 급경사 계단을 발견하고 내려가니 숲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바다가 파도소리부터 앞세우고 기다린다.

 

인적이 드문 해변에서 모래대신 잘그락거리며 조약돌을 쓸어내리는 파도소리가 선명하다. 이런 장소는 혼자서 앉아 멍 때리기 안성맞춤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가 ‘Wreck beach’라고 유명한 선택적 누드비치(Clothing is optional)였다. 난생처음 맞이한 누드비치는 무방비 상태인 내게 매우 당혹스럽다. 오늘따라 운이 따르지 않는지 나이가 드신 남성 몇 분들만 완전누드로 선탠 중이다. 나도 저들처럼 벗어야할까를 잠시 고민했다.

 

 

밴쿠버에서 남쪽으로 약 50분 정도 이동하면 랭리라는 소도시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 멀지않은 거리에 포트랭리라는 조용하고 작은 마을이 있다. 프레이져강이 흐르고 나무숲이 우거진 강가에는 선착장을 가진 오래된 박공집이 있어 조용하고 고즈넉한 시골 분위기가 느껴진다. 오래된 나무에 기대어 주변의 자연과 동화되어 있자니 잠시 시간이 정지된 듯하다. 이 풍경들은 그동안 분주하게 달려온 나의 삶에 여백을 만들어 준다.

 

 

 

 

 

다시 남쪽으로 이동하여 바다풍경이 뛰어난 유명한 '화이트록 비치'에 잠깐 들러 바다와 어우러진 주거지들과 도로를 따라 나열된 상점 앞을 관광객 모드로 어슬렁거리며 구경한다.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바다조망이 좋은 공원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갈매기들의 비행과 한가로운 요트들이 떠가는 바다는 이미 한 폭의 그림이다. 따사로운 오후 눈부신 햇볕 아래 선탠을 즐기러 나온 가족들의 느긋함을 보니 나 역시 한 낮의 고양이처럼 나른해진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승용차를 몰고 미국국경을 넘어보았다. 영어소통도 어렵고 입국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롭지만 이런 경험도 다 유익한 경험이자 공부라고 여긴다.

 

입국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미국으로 진입, 시애틀로 가는 길에 '피달고'라는 섬이 있다. 내친 김에 아나코디스 항만과 오크하버까지 답사하기로 마음먹었다.

 

가는 길 마다 만나는 바다며 호수에는 그림엽서처럼 예쁜 집과 요트 정박시설이 있고 한가로이 자연과 동화되어 사는 곳이 많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분주하게 사는가. 부럽고 샘이 난다. 그래도 바쁜 일상에서 탈출하여 멋진 이국적 풍경을 잠시 체험하는 것으로라도 만족하고 감사할 일이다.

 

 

먼 나라의 여행이나 출장은 시차가 엉킨 이유로 어김없이 이른 새벽에 잠이 깬다. 미리 챙겨간 스케치북에 낮에 보았던 풍경들을 기록하는 익숙한 시간이다. 채색을 하기 위해 휴대용 팔레트를 열었는데 아뿔싸 그 안에 들어있어야 할 휴대용 붓이 없다. 서둘러서 짐을 싸느라 미처 꼼꼼히 챙기지 못한 실수다. 날이 밝는 대로 물어물어 화구매장에 찾아가서 다행히 작은 붓 몇 개를 사가지고 돌아와 호텔방에서 작업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지나가며 보이는 미국농가와 피달고 섬, 오크하버의 농가창고, 화이트 록 비치의 인상적인 풍경들을 잊기 전에 기록하는 작업이다. 정신없이 몰입한 채로 몇 시간을 몰아쳐서 작업한 결과, 결국 어깨에 담이 결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림으로 얻은 통증이라서 후회는 없다.

 

잠잘 때 뒤척이다 자꾸 잠이 깨서 탈이지만.....

 

그렇게 낯선 장소, 머나먼 타향에서 밤은 깊어간다.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 글·그림 임진우 정림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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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Arts 기자 webeconom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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