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이코노미=글·그림 건축가 임진우] 봄을 앞 둔 늦겨울이라도 중국 심양은 춥다.
방문 할 때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도시화가 급격히 가속화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괄목상대(刮目相對), 상전벽해(桑田碧海), 일취월장(日就月將)같은 고사성어가 느낌표처럼 날아오는 이유는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미래도시를 상징하는 초고층 빌딩과 복합 상업공간들이 계속 공사 중이라 타워크레인들이 거대로봇처럼 도심을 장악하고 있다. 교통량도 증가해 소음과 매연, 미세먼지들이 점령군이 되어 때로는 세기말 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분주한 도시에서 시간이 정지된 고건축을 찾는다면 북릉공원을 추천한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으로 수공간과 함께 넓은 시민공원을 포함하고 있어 웬만한 대학교 캠퍼스의 크기와 맘먹는다. 잘 조성된 진입공간을 거쳐 왕의 무덤까지 이어지는 약 1.5km의 진입과정은 하나씩 나타나는 옛 건물을 천천히 산책하며 감상하기에 적당하다. 건축물들은 모두 고풍스러운데 기와색상은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에 제일 가까운 주황색으로, 건축물의 외벽색상은 더 붉은 주홍색으로 마감돼 전체적으로 붉은 계열의 건축물이 대지의 강한 중심축을 가지고 대칭의 구도로 도열되어 있다.
기승전결의 마지막에는 원형의 묘가 등장하는데 거대한 봉분위에 한 그루의 고목이 서있는 모습이 생경하다. 이 묘의 주인공은 '홍타이지'로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하여 인조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안긴 청나라의 2대 왕이다. 이 내용을 그린 영화 '남한산성'에서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그리고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 두 충신의 끝없는 의견 충돌과 대립이 잘 그려져 있다. 그 해가 1636년 (인조 14년)이었으니 지금으로 부터 380여 년 전의 사건이다.
하지만 추운 겨울 남한산성 앞에서 조선을 위협하며 호령하던 그 역시 세월이 흐른 오늘의 추운 겨울날, 저 봉분아래 쓸쓸하고 차가운 주검으로 누워있다.
흘러가는 거대역사에 비하면 인간의 부질없는 야욕은 그 주검만큼이나 초라하다. 해가 기우는 북릉을 걸어 나오는데 누가 날리고 있는지 시린 겨울 하늘에 연 몇 개가 처연하게 걸려있다.
홍타이지의 영혼도 저 연과 함께 하늘을 날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양역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면 단동역에 내린다. 언어가 자유롭지만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땅, 단동과 출입은 자유롭지만 언어가 자유롭지 못한 땅, 신의주 사이에 압록강이 흐른다. 북한과 중국 대륙의 접경지역인 이 곳은 압록강 철교로 이어져 이를 통해 물류의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철교는 신철교와 재래교가 나란하게 평행을 이루고 있지만 재래교는 허리가 끊어진 채로 존치돼 있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 측의 군수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에 의해 잘려진 이 철교는 현재 관광객들만 드물게 찾아온다. 폭격에 의해 종잇장처럼 구겨진 철교의 단부는 생생한 역사의 아픈 흔적을 그대로 노출한 채 강물 위에 서있지만 그 날을 잊은 듯 강물은 무심히 흐르고 있다. 그래, 상처는 망각의 강물에 흘려보내는 것이 답일지도 모른다. 봄이 멀지 않았는지 물 위에 갈매기 몇 마리가 남아있는 교각 사이로 한가롭게 떠다니며 겨울 햇볕에 졸고 있다.
유람선에 올라 강물의 중앙을 가로지르니 강을 중심으로 양 쪽 도시의 발전상이 확연히 비교된다. 중국 측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과시하듯 고층 빌딩과 수변 상업시설들이 빽빽한데 비해 강 너머에 북한 땅은 상대적으로 한적한 밀도의 초라한 건물 군들로 이루어져 있다. 미세먼지 속에 암울한 느낌의 스카이라인마저 폐쇄적인 동토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발전 가능성을 남겨둔 채 미개발된 신의주에 마음이 닿는다.
북미회담도 조심스럽게 진행되는 요즘이지만, 남북경협의 가능성으로 미래는 점점 밝아지고 있다. 먼 훗날 압록강변의 신의주가 역량이 뛰어난 건축가를 만나 정교한 도시계획과 마스터플랜을 통해 매력적이고 경쟁력이 있는 수변도시로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 글·그림 임진우 정림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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