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삶, 그리고 희로애락이 담긴 아홉 가지 교향곡

  • 등록 2018.06.01 17: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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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이코노미=손시현 기자] 아무리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일지라도,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아픔과 희열을 넘나드는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있자면, 마치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과 같은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긴 시간이 흘러도 후세에 영원히 전해질 그 이름, 베토벤. 그가 남긴 음악과 그 찬란한 이름 뒤에는 어떤 비화가 있을까? 그의 음악에서 전해지는 그의 삶을 음악과 함께 즐겨보자. ◇ 청력을 잃기 전까지 베토벤의 삶 베토벤은 독일의 본에서 가난한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나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병약한 어머니와 술주정뱅이 아버지. 베토벤을 유명한 음악가로 키우고 싶어 했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네 살 때부터 혹독하게 음악교육을 시켰다. 재능이 뛰어났던 베토벤은 음악 안에서 삶의 유일한 즐거움을 느끼며 열한 살에 극장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열세 살에는 오르가니스트로, 열다섯 살에는 생계를 위해 피아노 교습을 시작했다. 베토벤은 위대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야망을 품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서 하이든을 비롯한 여러 대가를 스승으로 모시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했다. 그곳에서 그는 차근차근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쌓아갔다. 다만 의뢰받은 곡을 자신이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다 보면 마감일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서 후원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었다는 건 흔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가 20대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젊은 나이에 자신이 점점 더 소리가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자각했고, 수첩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했다. 최고의 음악가를 꿈꾸던 그에게 청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버거운 진실이었다. 베토벤은 여러 해 동안 철저히 이 진실을 숨기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그의 두 친구, 의사 베겔러와 목사 아멘다에게 고백했다. 그는 베겔러에게 “내가 얼마나 나의 존재를 저주하였는지 모르네. 그러나 이 처절한 운명과 싸워보고 싶다네”라고 적힌 편지를 보냈다. ◇ <합창 교향곡>에 얽힌 비화 9가지의 교향곡 중 마지막 곡인 <합창 교향곡>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곡이다. 하지만 이 희대의 명곡이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잃은 후에 쓴 곡이라는 것을 아는가? 듣지 못하는 그가 이 웅장한 화성과 멜로디들을 오선지에 그려냈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오로지 정신력과 열정만으로 버텨낸 베토벤에게 숙연함까지 느껴진다. 베토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작품을 구상했지만, 어쩌면 기악과 성악을 결합한 교향곡의 정점 <합창교향곡>을 만들어낸 시점에서 그의 임무는 끝났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합창교향곡>에는 익히 알려진 에피소드가 있다. 이 교향곡을 직접 지휘한 베토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던 나머지 곡에 심취하여 연주가 끝났는지도 모르고 눈을 감고 팔을 휘둘렀다. 이후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일어나 베토벤의 몸을 관객 쪽으로 돌려주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 다시 한번 그의 음악을 들어본다면,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하다고만 느껴졌던 그의 음악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WD매거진팀 webeconomy@naver.com
손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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