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이코노미=하수은 기자]올해로 8.15광복절 72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한국 정·재계에는 친일의 흔적들이 도처에 남아 있다. 하지만 친일의 행적들은 교묘하게 덧칠된 채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인이나 기업으로 군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제강점기인 지난 1926년 설립된 유한양행은 대표적인 ‘민족기업’으로 꼽히지만, 그 이면엔 감추고 싶은 흑역사도 존재한다.
유한양행은 창업주인 고(故) 유일한 박사가 1930년대 후반,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위원으로 선임돼 임시정부 후원 등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는 점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추앙을 받는 애국애족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 박사의 동생인 고 유명한 전 사장 재임 시절 일본군에 비행기 제작비를 헌납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유한양행의 과거는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라는 두 얼굴이 공존하고 있다.
유 전 사장은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촉발된 태평양 전쟁 때인 1941년 12월 유한양행의 사장에 취임한 직후 자신과 회사 명의로 종로경찰서를 통해 ‘유한애국기’로 명명된 전투기 1대의 제작비를 일본에 5만 3000원을 헌납했다. 당시 기와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금액이 1000원 가량 되었던 점을 감안해 보면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유 전 사장의 이 같은 친일 행적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명단 중 경제 분야에 분류돼 기록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 연구에 일생을 바친 재야사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임종국씨의 유지를 받들어서 1991년 창립한 역사연구단체로, 설립 당시의 명칭은 반민족문제연구소였으나, 1995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로 바뀌었다.
한편 유한양행 홈페이지나 <유한양행 50년사>에서 유명한 전 사장의 친일 관련 기록은 흔적 조차 찾을 수 없다. 어느 기업이든 공과(功過)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공(功)이 태산 같고 과(過)가 티끌만하다고 해서 공(功)만 봐달라는 것이 ‘애국기업’을 표방하는 유한양행의 기업이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