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이코노미 김영섭 기자] “아인슈타인이 지금 태어났다면 과학고를 갈 수 없을 겁니다. 우리가 먼저 변하고, 바뀌어야 합니다. 똑똑한 애 뽑아서 입시성과에 도취해서는 안됩니다. 한국과학영재학교 입학생 절반을 ‘한 분야만 특출한, 아주 특이한 애’로 뽑겠습니다. 그래서 입학시험에 정답이 없는 문제를 내겠습니다. ‘진짜 영재’를 뽑기 위해서는 답 없는 문제를 내야 합니다.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상상력으로 뭔가 풀려는 노력을 했는지 볼 것입니다.”
국내 최초의 과학영재학교이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의 유일한 고등학교인 한국과학영재학교가 정말 ‘영재학교’로 거듭날 것인가. 4월 1일자로 제10대 한국과학영재학교 교장으로 공식 취임한 최종배(60) 신임 교장의 이런 야심찬 계획이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최 교장은 웹이코노미와 특별인터뷰에서 ‘모든 분야를 잘하는 우등생이 아닌, 특별한 분야만 잘하는 괴짜 영재’를 뽑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최종배표 영재학교 입시’의 핵심 키워드를 뽑으면 “정답이 없는 문제”, “여러 문제 가운데 자신이 풀 문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운이 없어 떨어지거나 거꾸로 되는 경우가 없도록 할 것”, “시간이 없어 연구를 못하는 식으로 돼서는 안 되는 것처럼, 시간이 없어 문제를 못 푸는 일이 없도록 시간은 완전히 ‘풀(full)’로 줄 것” 등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한국과학영재학교에는 ‘2022 T/F’가 꾸려졌다. 당장 내년인 2022년부터 ‘한 분야에만 미친 괴짜’를 뽑을 입시전형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최 교장은 “국가가 예산으로 투자하는 만큼 영재의 원칙이 분명해야 하고, 그 원칙이 훼손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원칙은 세우되 실행은 천천히”라고도 했다.
특히 2023년은 영재학교 전환 20주년인 만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취지로 ‘2040 T/F’도 출범했다.
최 교장은 ‘2040 T/F’의 목표에 대해 “이젠 20년이 다 돼가는 만큼 명실공히 최초 영재고로서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는 상징, 전통과 문화가 필요하다”며 ‘칭찬, 협동, 도전’을 상징하는 학교 표상으로 ‘범고래’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최 교장은 “흔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범고래’를 표상화해 지능이 좋으면서도 협동정신이 뛰어난 이미지를 지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종배 신임 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과기 행정을 대표하는 이공계 엘리트 관료로 손꼽힌다. 경북 포항 출생으로 광운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 대학원 핵공학 석사,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대학원 전기·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종배 교장은 1985년 과학기술처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이래 35년간 과기부에 근무하며 주요 요직을 거쳤다. 이후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전략본부장을 비롯해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처장 겸 상임위원, 제3대 기초과학연구원(IBS) 상임감사를 역임했다.
다음은 지난 5월 18일 오전 10시 한국과학영재학교 교장실에서 한 최 교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Q. 공대를 졸업하고 공학박사, 과학기술 파트 공직 생활 근 30년에 ‘과학기술의 씨앗’ 육성소로 비유할 수 있는 과학영재학교를 맡으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A. 10년전쯤 교육과학기술부 시절에 전문가를 교장으로 초빙하는 프로그램을 접한 적이 있었고, 그 때부터 언젠가 기회가 오면 교장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8월에 한국과학영재학교 사이언스 페어(KSASF)에 참석하였고, 2016년 2월에는 한국과학영재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두 차례의 방문이 한국과학영재학교에 오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학영재학교는 국내 최초의 과학영재학교이면서 과기부 소속의 유일한 학교입니다. 특히 교사자격증이 없이 과학행정을 한 사람이 올 수 있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그래서 제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선택한 표면적 이유는 영재학교라는 점과 KAIST 부설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학교장이 할 수 있는 재량이 넓다는 점입니다. 한국과학영재학교가 아닌 다른 영재학교 또는 다른 일반학교라면 지원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일이기에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오로지 학생 자신들과 대한민국의 미래만 생각하고, 영재다운 영재, 대한민국의 보물로 키워낼 생각입니다.
Q. 먼저,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소개해 주시면.
A. 한국과학영재학교는 1991년 3월 부산과학고등학교로 개교를 한 이래, 2003년 3월 국내 최초로 과학영재학교로 지정되었고, 2005년 7월 한국과학영재학교로 개명하였으며, 2009년 2월 KAIST 부설로 전환되었습니다. 학교의 교훈은 창의, 열정, 봉사이며, 예산의 대부분인 180억원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정부출연금으로 지원받고 있습니다.
2021년 1월 현재, 총 131명의 교직원이 있으며, 이 중 교원이 65명입니다. 교원은 교장과 교감, 전임교원 46명, 교육청에서 파견온 교원 7명, 외국인 교원 8명, 기간제 교원 2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5명이 박사학위 소지자입니다. 우리 학교의 장점 중 하나는 교원들이 본업인 수업, 연구, 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업무는 직원들이 전담한다는 사실입니다. 학생은 외국인 학생 35명을 포함하여 현원 389명이며, 학년별로 12개 반으로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Q.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우리나라 최초 영재학교다. 현재 국내 영재학교가 8개로 늘었는데, 영재학교마다 어떤 차이점이 있고 한국과학영재학교만의 차별화와 특장점이 있다면.
A. 현재 우리 학교를 제외한 7개 학교 전부가 교육부 소속이고,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7개 영재학교 간 학생선발 및 교육 방식에서의 차이점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학교는 다른 영재학교와 달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이고 특히 KAIST 부설입니다. 당연히 차별점이 있습니다. 우리 학교의 학생 선발과 교육정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과학기술 인재정책과 KAIST의 교육 정책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습니다. KAIST 부설로 전환된 초기에는 KAIST가 우리 학교의 교육 정책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졸업생의 대부분이 KAIST로 진학하는 등 KAIST와의 연계가 지금보다는 훨씬 강했습니다. 이후 과학고들이 영재학교로 전환되었고, 우리 학교의 운영 및 창의적인 교육방식을 모방함으로써 영재학교 간의 차별화는 점점 줄어드는 실정입니다. 학교의 운영과 관련해서는 교원과 직원의 역할이 분리되어 있는 점, 예산의 대부분을 정부로부터 출연금을 받아 운영하는 점, 교원의 대부분이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점 등이 우리 학교가 가진 특징이면서 장점입니다.
Q. 교장선생님 설명대로, 한국과학영재학교는 KAIST 부설이자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기관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이렇게 된 배경과 이런 배경이 학교 운영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A. 교사 자격증 없이도 교장이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학교라는 게 그런 배경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과정을 보면, 설동근 전 교육과학기술부 1차관께서 부산시 교육감을 지내던 때인 2009년 2월 KAIST 부설로 전환됐습니다. 아마도 설 전 차관의 의중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 이듬해인 2010년 8월 교과부 1차관으로 재직하시면서 과학영재학교를 과기 산하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신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과학영재학교는 과기부 산하로 들어가면서 교육부 소속의 다른 영재학교나 과학고와 다른 선발 및 교육 커리큘럼을 갖게 됐습니다. 학생 선발과 커리큘럼을 우리가 자율적으로 창의적으로 결정합니다. 과학고 등은 일반학교와 마찬가지로 교육부가 정해주는 검정교과서 등으로 공부하지만, 우리는 본인이 하고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학교가 정할 수 있다는 게 큰 차이점이다.
자율과 심화, 연구 등의 특장점을 가진 한국과학영재학교가 과기특성화 대학으로 연결되는 이유이자 배경이 되는 부분입니다. KAIST와 연계된 프로그램으로는 HP(Honors’ Program)이 있는데, 6학기를 영재학교 HP에 등록해 KAIST에서 수강해 6개월 빨리 졸업이 가능한 제도가 있습니다. KAIST 기준 최대 58학점을 인정받는 AP(Advanced Placement) 제도, KAIST 교수 강의지원, KAIST 교수의 지도하에 졸업연구 수행 프로그램 등도 있습니다.
Q.학교라면 당연히 입학과정과 교육과정이 핵심이라고 보는데,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A. 영재학교로 우리 학교 하나만 있었을 때에는 입학과정과 교육과정에 분명한 차별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8개의 영재학교와 20개의 과학고가 있는 지금, 먼저, 선발정책에는 큰 차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모든 학교들이 똑똑한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한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학교의 경우 입학과 교육방식에서의 분명한 차별화가 있어야 존재 이유와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도 바로 그 차별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부임하자마자 처음으로 변화를 시도한 사안도 바로 2022학년도 입학전형 요강이었습니다. 뭔가 다른 학생, 독특한 학생, 괴짜 학생을 어떻게 하면 선발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그런 학생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선발하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선발된 독특한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맞춤혐으로 교육할 수 있을까가 교육과정에 대한 가장 큰 숙제입니다. 지금까지는 똑똑한 학생들을 선발했기 때문에 굳이 교육방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분야별로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선발하는 경우에는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부임하자마자 새롭게 출범시킨 T/F 중 하나가 ‘2022 T/F’입니다. 2022년부터 적용하려고 하는 교육과정 개편에 대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Q. 겸해서 영재학교 교장님으로서 향후 학교 운영의 비전과 핵심적 정책을 밝혀주시면.
A.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C-PORT 전략으로 학교를 운영해 나갈 방침입니다. 최우선에 소통(Communication)이 있습니다. 학교 구성원들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려고 모든 직원들로부터 직접 업무보고를 받았고, 교사들의 사무실을 찾아다녔으며, 모든 회의에 참석하여 소통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참여(Participation)입니다. 학생들도, 교원들도, 직원들도, 학교의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해 어떤 방식으로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현장 중시(On-site)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현장을 직접 보고 대화를 나누고 그리고 정책을 결정하려고 합니다.
다음은 자율적 책임(Responsibility)입니다. 본인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한 후 주어진 임무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갖고 알아서 수행하도록 할 것입니다. 물론 궁극적 책임은 교장에게 있음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투명성(Transparency)입니다. 모든 행정은 반드시 투명하게 숨김없이 추진하겠다는 의미입니다.
Q. 현재 학생수가 400여명인데 여학생 비율이 남학생보다 현저하게 낮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개선 방안은 있는지.
A. 현재 여학생은 63명입니다. 약 16% 정도입니다. 선발에 있어서 성별에 대한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여학생의 지원 비율이 낮습니다. 고민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개선할 여지가 있는지는 검토해 보겠습니다.
Q. 영재학교 출신 졸업생의 진로는 주로 어떻게 되는지.
A. 영재고로 전환한 이래 2103명의 졸업생이 배출됐으며, 이 중 97.7%가 대학으로 진학했습니다. 이 가운데 68.5%가 KAIST를 포함한 과기 특성화 대학으로, 23.6%가 서울대를 포함한 국내 일반대학으로, 5.5%가 해외 대학으로 진학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매년 과기 특성화 대학으로의 진학이 줄어드는 추세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을 위해 KAIST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영재학교 졸업생 중에 소개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A. 사실 엄청나게 많지만, 몇분만 소개해 봅니다. ’03학번 김지윤 박사는 서울대 전기공학부, 미국국립보건원(NIH) 박사후연구원(포스닥)을 거쳐 UNIST 신소재공학부 조교수로 임용돼 과학영재학교 출신 제1호 교수 기록을 세웠습니다. ’04학번 오성진 박사는 영재학교 5학기 조기 졸업, KAIST 역대 최연소·최단학기(4학기)에 최고 평점(4.26/4.3) 졸업으로, 만 24세에 프린스턴대학 수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해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버클리) 조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창업으로는 ’06학번 김재현 식품회사 ‘정육각’ 대표가 있습니다. 김재현 대표는 KAIST 수학과를 졸업하고 초신선 식품 제공을 위한 ‘온디맨드(Just In Time)’ 시스템을 적용해 연매출 200억원에 육박하는 성공을 거뒀습니다. 김 대표는 2019년 미국 포브스 아시아에서 ‘30세 이하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3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Q. 정통 관료 출신으로 학교 교장까지 맡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것 같다. 과학기술부,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자력안전위원회, 기초과학연구원(IBS) 등 재직 경험을 어떻게 접목시킬지도 고민이 많으실 것 같다.
A. 교육과 직접 관련된 경험은 교육과학기술부에 근무하면서 교육과 관련된 정책에 대한 간접적인 지식 외에는 별로 없습니다. 물론 대학에서 3학기 동안 시간강사로 강의한 경험은 있습니다. 학교장은 학교를 총괄하는 최고경영자(CEO)이기 때문에 풍부한 행정과 과학기술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직간접적인 교류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의 운영과 행정시스템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Q. 과학기술과 영재교육, 중요한 화두인 것 같다. 이에 대한 교장선생님의 철학과 비전, 향후 각오 등을 마지막으로 밝혀주시면.
A. 제가 구상하는 정책의 밑바탕에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3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왜 한국과학영재학교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이지? 왜 KAIST 부설이지? 왜 한국과학영재학교가 영재학교로 존재해야지?
누구나 할 수 있는 답은, 교육부 소속의 영재학교와 차별화하려고, KAIST의 교육 철학을 공유하려고, 영재학교가 추구하고자 하는 창의적 교육 등을 하려고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우리 학교가 영재다운 영재를 선발해 영재에게 필요한 창의적 교육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과, 과연 다른 영재학교와의 차별점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학교만의 독특하면서도 진정한 영재 선발정책과 창의교육 정책을 만들어 보고 싶은 것입니다.
교육에 대한 저의 철학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첫째, 고등학생으로 알아야 할 지식은 반드시 습득하도록 하되, 점수화로 줄 세우기는 지양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학생 각자의 재능을 자신이 개발하는 방향으로,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인성 교육과 리더십 활동도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김영섭 기자 kimlily@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