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적 관점으로 이상 시 연구의 새 활로를 연 과학도들”

  • 등록 2024.09.12 22: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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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T 학사과정 3학년 이태균·임혁준 학생,
물리학 이론 적용해 「오감도 시제4호」 의미 밝혀
「오감도 시제4호」의 ‘숫자판’을 입체화
구현된 전자기학적 원리 찾아내
MRI처럼 환자(세상)의 내부를
투시하고 진단하는 작품임을 밝혀
“시인이야말로 사회 내부를 투시하고
진단하는 ‘의사’라는 이상의 소명의식”

 

광주과학기술원(GIST, 총장 임기철)은 학사과정생 2명이 이상(李箱)의 난해시 「오감도 시제4호」를 전자기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획기적인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논문의 제목은 ‘「오감도 시제4호」에 구현된 내부 진단의 전자기학적 원리’이며, 기초교육학부 이수정 교수(교신저자)의 지도로 학사과정 3학년에 재학 중인 이태균 학생(제1저자, 물리‧광과학과)과 임혁준 학생(제2저자,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이 연구를 수행했다.

 

이 논문은 “논리성과 창의성이 모두 탁월하다”, “이상 시 연구의 새로운 활로이다”등 학계의 높은 평가를 받으며 국문학 분야 KCI 저널인 한국시학연구 79호에 게재(2024년 8월 31일 발행)되었다.

 

「오감도 시제4호」는 천재 시인 이상의 오감도 연작시 중 한 편으로, 텍스트가 아닌 뒤집어진 숫자판으로 구성된 난해한 작품이다. 시리즈의 주된 주제인 ‘관찰’을 독창적으로 표현했으며 의사로 자처한 이상이 환자를 진단하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숫자판의 해석, 진단의 의미, 환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기존의 논의들은 모두 숫자판을 가로나 세로 방향으로 읽었다.

 

그러나 가로나 세로로 읽었을 경우, 숫자판의 수열이 ‘•’에 의해서 단절된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기존 접근법을 탈피하여 숫자판을 대각선과 나선형 방향으로 읽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시 속의 단서를 활용하여 숫자판을 입체화했다.

 

연구팀은 「오감도 시제4호」에 주어진 단서로 숫자판을 입체화하고 거기에 구현된 전자기학의 원리를 찾아냄으로써, 「오감도 시제4호」가 전자기학적 원리에 기반하여 환자(세상)의 내부를 투시하고 진단하는 작품임을 밝혔다.

  

연구팀은 이상이 「오감도 시제4호」에 다양한 단서(뒤집힌 숫자, 가로나 세로 읽기를 했을 때 ‘•’에 의해 단절되는 수열, ‘진단 0•1’등)를 배치하여 숫자판을 원기둥과 토러스 형태로 말도록 유도했음을 밝혔다. 이러한 입체 구조에서 나선형으로 수열을 읽어보면, 좌우가 뒤바뀌고 단절되어 비정상적인 것처럼 보였던 수열이 정상적인 형태로 읽힌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진단하려는 목적으로 원기둥 내부를 투시하기 위해 수열과 ‘•’가 나선형 궤적을 그리며 닫힌 공간을 형성하는 것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유도되는 스토크스 정리(Stokes’ theorem)*를 이용했음을 밝혔다.

 

이 정리는 내부의 상태를 경계에서의 정보만으로 진단할 수 있게 해주는 전자기학의 핵심 원리로, 시의 숫자판이 이러한 과학적 개념을 반영하고 있음을 규명한 것이다. 연구팀은 또한 숫자판이 외부 정보를 통해 내부의 벡터장을 계산해 내는 전자기학의 발산 정리와 헬름홀츠 정리를 적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나아가 연구팀은 숫자판을 이용해 만든 토러스 구조에서 헬름홀츠 정리(Helmholtz theorem)를 사용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회전, 발산, 경계조건)이 모두 충족됨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입체화된 숫자판의 표면 정보와 헬름홀츠 정리를 활용하여 내부의 환자의 ‘존재성’과 그 형태의 ‘유일성’을 보장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때 원기둥 내부의 환자는 벡터장이고, 오감도는 보이지 않는 내부의 환자(벡터장)를 이미징한 벡터장 지도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오감도 시제4호」에서 ‘의사 이상’이 MRI와 같은 비침습적 방식으로 사회 내부를 들여다본다고 해석했다. 이를 통해 「오감도 시제4호」가 환자(세상)의 병을 직접 치료하지는 않지만, 환자(세상)의 병을 진단하는 메커니즘이 바로 문학, 시이며, 보이지 않는 내부를 투시하고 진단하는 것이 시인의 책무임을 표현한 작품임을 밝혔다.

 

이번 연구는 2024년 봄학기에 개설된 <이상문학과 과학> 수업에서 이태균 학생(제1저자)이 발표한 내용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상문학과 과학>은 이상의 작품을 문학과 과학의 융합적 관점에서 탐구하는 과목으로, 이미 이상 시에 대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여러 차례 제출한 바 있다.

 

또한 연구의 핵심 내용을 시각화한 ‘Risang Torus’ 프로그램은 임혁준 학생(제2저자)이 같은 학기에 동시 수강한 <아트앤테크놀로지> 수업의 과제를 발전시켜 개발한 것이다.

 

이수정 교수는 “〈이상문학과 과학〉수업을 통해 논문이 발표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라면서 “모두 훌륭한 연구였지만 이번에는 졸업생이나 4학년 학생이 아닌 학사과정 3학년 학생들이 이처럼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를 완성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면서 “또한, 올해는 「오감도」가 발표된 지 90주년을 맞아 이번 연구가 더욱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제1저자인 이태균 학생은 "훌륭한 전자기학과 다변수해석학 수업을 통해 물리학 개념들을 깊이 이해하고, 평소에도 이를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며 “이러한 배경이 이번 성과를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과학과 인문학 양면을 모두 깊이 배울 수 있는 GIST의 교육 환경에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2저자인 임혁준 학생은 "오감도 시제4호 입체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참여하며 뜻깊은 경험을 했고, 우리의 논문이 평면에 쓰여진 시를 입체적으로 해석하는 첫 단추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상 탐구의 학술적 결과물로서 의미를 갖는 이번 논문의 연구 성과는 이상의 오감도 연작시를 다룬 이수정 교수의 대본을 무용의 형식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이 확정됨에 따라 예술 분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공연의 제명은 <烏瞰圖: 까마귀가 내려다본 세상>(블루댄스씨어터, 안무 정유진)이며, 제45회 서울무용제 경연대상부문에 선정되어 오는 11월 15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이 교수는 “무용 대본에 반영된 지식과 영감 역시 학생들과 함께하는 연구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이번 연구와 공연을 통해 이상의 작품이 현대적으로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GIST 기초교육학부 이수정 교수가 지도하고 학사과정 이태균 학생과 임혁준 학생이 수행한 이번 연구는 한국시학회가 발행하는 국문학 분야 KCI 저널 《한국시학연구》에 2024년 8월 31일 게재됐다. 

이종호 기자 ys@newsbe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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